[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면서'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 져요

'-면서'의 사전적 용법은 '두 가지 이상의 움직임이나 상태 따위가
동시에 겸하여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표준국어대사전).
이 풀이의 핵심은 '두 가지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짐'에 있다.
Getty Images Bank
“그는 1961년부터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재직했다. 이때부터 그는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시를 쓰면서 대표적인 저항시인의 면모를 보였다. 군(軍) 시절 앓았던 간디스토마가 재발하면서 1969년 39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껍데기는 가라>로 잘 알려진 시인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 50주년이다. 그를 소개한 이 대목은 얼핏 보면 딱히 꼬집을 데 없는, 완성된 글이다. 하지만 곰곰 뜯어보면 거슬리는 데가 있다.

두 개 동작이 동시에 일어날 때 쓰던 말간디스토마가 ‘재발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이 표현이 어딘지 어색하다. ‘-면서’의 사전적 용법은 ‘두 가지 이상의 움직임이나 상태 따위가 동시에 겸하여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표준국어대사전). 이 풀이의 핵심은 ‘두 가지 동작이 동시에 이뤄짐’에 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같은 게 전형적인 쓰임새다.

‘재발하면서’가 쓰인 문맥은 좀 다르게 읽힌다. ‘간디스토마가 재발해 결국 세상을 떠났음’을 나타낸다. 두 동작은 시간차가 있으며 인과관계에 놓여 있다. 문장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그런 데서 연유한다. 독자에 따라 비문으로 보기도 할 것이다.

최근 이런 표현이 넘쳐난다. 아무 거리낌 없이 쓰고 독자들도 무심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를 어법의 변화로 봐야 할까? 아니면 잘못 쓰는 말이므로 적극적으로 바꿔 써야 할까? ‘-면서’는 두 가지 이상의 동작이나 상태를 겸하여 나타내는 것이 원래의 전형적 용법이다. ‘책을 주면서 말했다’ ‘사나우면서 부드러운 데가 있다’ 같은 게 그 예다. 1961년 나온 민중서림 간 <국어대사전>(이희승 편저)엔 그렇게 풀이했다. 이런 풀이는 이후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1991년)을 비롯해 금성판 <국어대사전>(1991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1999년)으로 이어져 왔다.현실에선 인과관계 나타낼 때도 사용해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①정부는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8년간 주택 수요를 충당할 공공택지를 수도권에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②정부가 ‘10월 2일 임시공휴일 지정안’을 의결하면서 전국 지자체, 주요 호텔들이 관광객 유치에 뛰어들고 있다.

같은 ‘-면서’로 이어졌지만 구조와 의미는 전혀 다르다. ①은 하나의 주어에 두 개의 동작이 함께 벌어졌음을 나타낸다. ②는 주어가 두 개이면서 각각의 주어에 따른 서로 다른 동작이다. 의미상으로도 차이가 있다. ①은 선행절과 후행절이 동시에 이뤄졌음을 나타낸다.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도 밝혔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사전 풀이 그대로의, 정상적인 문장이다. 이에 비해 ②는 ‘A가 ~함에 따라 B가 ~하고 있다’는 뜻이다. 선행절이 먼저 이뤄지고 후행절이 뒤이어 이뤄졌다. 시간적으로는 선후관계이면서 의미적으로는 인과관계다. 하지만 이런 용법은 <표준국어대사전>의 ‘-면서’ 풀이로는 설명이 안 된다. 비(非)규범적 표현이라는 얘기다. 이는 오히려 어미 ‘-자’의 풀이와 용법에 가깝다. 이런 쓰임새가 특별히 거부감을 주지는 않는다. 이미 현실 어법으로 활발하게 쓰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전풀이를 보완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그래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고려대 한국어대사전>(2009년)은 기존의 용법에 ‘앞 절의 사실이나 상태, 동작 등이 원인이 돼 뒤 절의 결과로 이어짐을 나타내는 말’이란 풀이를 더했다. 이런 용법으로 보면 신동엽 시인의 ‘재발하면서’ 문장이 비로소 설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