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abroad] 신비로움 간직한 미지의 유적들

방글라데시는 열악한 인프라 때문에 그간 관광객들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었지만, 사실 서방 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가 곳곳에 널려 있다.

특히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유적들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 오스만튀르크의 그림자…바게르하트의 '60돔'
이슬람교가 국교인 방글라데시는 국민 89%가 무슬림이다.

당연히 많은 이슬람 유적을 볼 수 있다. 이중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15세기 터키의 장군 칸 자한이 남부 지역에 세운 고대 도시 바게르하트(Bagerhat)의 모스크다.

갠지스강과 브라마푸트라강이 만나는 순다르반스 지역의 위쪽에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향력이 미쳤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건물이 바로 '60돔'(Sixty Dome)이다. 실제 이 건물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돔 숫자는 총 77개이고, 돔 아래를 지탱하는 기둥이 60개인데, 건물의 이름은 60돔이 됐다.

돔으로 장식된 바깥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의외로 화려하지 않다.
주변의 이슬람 신자들이 한두 명씩 찾아 기도를 드릴 뿐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모스크를 나오다 경찰복 차림의 여경 2명과 만났다.

놀랍게도 소총을 매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권 국가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은 경향이 있지만, 방글라데시는 예외다.

곳곳에서 군인과 경찰복을 입고 근무하는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8년 성(性)격차지수에서 방글라데시가 아시아에서 필리핀에 이어 2위에 랭크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수긍이 갔다.
◇ '방글라데시의 만리장성' 마하스탄가르

바게르하트에서 북쪽으로 가면 방글라데시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고대 도시들을 만날 수 있다.

BC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마하스탄가르(Mahasthangarh)가 대표적이다.

버스를 타고 도시에 가까이 가면 일단 차창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길고 긴 성벽이 찬란했던 고대 도시의 옛 영화를 자랑한다.

창밖엔 쌀이 재배되고 있는 논 위로 붉은 벽돌 성벽이 줄지어 나타났다 사라진다.

마치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수도 다카에서 서북쪽으로 230㎞ 거리에 있는 마하스탄가르는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카라토야강 서쪽으로 길게 뻗은 지역에 세워진 이 도시는 BC 320년경 찬드라굽타가 세운 마우리아왕조의 인도 북동부지역 거점 도시였다.

남북으로 1천525m, 동서로 1천370m의 규모다.

약 5m 높이의 붉은 벽돌로 된 성벽이 쓸쓸히 서 있다.

성벽 위에 올라서니 내부는 텅 비어있다.

화려했던 도시의 건물들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고, 오로지 남은 건 성벽뿐이다.

성 주변엔 가끔 몇몇 커플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마하스탄가르의 성벽 바깥쪽으로는 작은 힌두 사원 유적이 있다.
이 사원 유적은 1928년과 1960년에 한 번씩 발굴이 이뤄졌고, 그 결과 동서쪽에 사원이 하나씩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쪽 사원은 6세기경 건축된 것으로, 동쪽 사원은 11세기경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는 주조된 동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 한없이 평화로운 불교유적지 파하르푸르

마하스탄가르를 떠난 차량은 서북쪽의 파하르푸르(Paharpur) 지역으로 향했다.

파하르푸르에는 방글라데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교유적지 가운데 하나인 소마푸라 마하비하라(Somapura Mahavihara)가 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국가지만, 다른 종교에 대해 포용적이어서 종교적 긴장감은 거의 없다.

'위대한 수도원'을 뜻하는 이곳의 첫인상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아직 사람들의 발걸음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일까? 입구에는 제대로 된 상점조차 없다.

몇몇 행상들이 앉아 음식이 팔리기를 기다렸지만, 대도시처럼 악착스럽지 않다.
그저 '사주면 고맙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느낌으로 한가롭게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대승불교(Mahayana Buddhism)의 영향권에 있던 이곳은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있던 5개의 승려 교육 기관 가운데 한 곳으로, 불교 진흥기인 8세기 인도 팔라 왕조 시절에 세워졌다.

12세기까지 전 세계 승려들이 이곳에 와서 수행하는 등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서구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사찰 유적은 높이 24m, 면적 8만5천㎡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지만, 현재는 가운데를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이 붉은 벽돌 기초만 남아 있다.

중앙탑에는 사각 구조 사원이 있고 177개의 승원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그 규모를 알기에는 지상의 눈높이 만으론 부족했다.

드론을 띄워보니 질서정연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드론은 이런 곳들을 관찰하기에는 제격이다.

사람 눈높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정사각형으로 기획된 이 유적지는 방글라데시 지역에 거대한 종교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붉은 벽돌의 건물 잔해를 배경으로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초원의 모습은 무한한 평화를 가져다준다.

이런 느낌은 거대한 나무 그늘에 하릴없이 누워 잠을 자는 개들에서도 느껴졌다.

어쩌면 저 개들이 부처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곳. 파하르푸르는 그런 곳이다.
◇ 시바 여신을 모시는 푸티아

운 좋게도 푸티아로 향하는 도로는 포장이 잘 돼 있었다.

포트홀도 많지 않아서 일행을 태운 차량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포장된 도로를 달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나 푸티아(Phutia)에 가까이 갈수록 도로 사정이 나빠졌다.

가까스로 도착한 푸티아는 그 고생을 보상해줄 만큼 아름다웠다.
푸티아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해자에 둘러싸인 힌두 유적 도시다.

해자는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이곳의 해자는 거의 저수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큰 규모다.

공중에서 보면 가로세로 500m는 족히 되는 크기의 저수지가 도시를 감싼 형국이다.

그 도시 한가운데 가로 100m, 세로 150m가량의 작은 저수지가 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초입에 시바 여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다.

하얀 탑으로 이뤄진 사원에서 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그 저수지 한켠에 왕이 머물던 라즈바리 궁전이 보인다.

해자로 둘러싸인 이런 지형은 처음 걸어서 이곳을 둘러볼 때만 해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중에 구글 지도를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