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손자 "할아버지 이름 금기였던 때 있었다"

최 발렌틴, 조부 기념비 제막식 참석…"유해 찾으려 노력했지만 못 찾아"
"할아버지 성함을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어요. 말하면 안 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만난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의 손자 최 발렌틴(82) 씨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묻자 이같이 털어놓으며 "최재형 선생 자녀들도 그런 이유로 피해를 많이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의 부친은 최재형 슬하 자식 11명 중 여섯째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서도 할아버지에 대해 들은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최재형 사후 그의 가족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스탈린 독재가 정점을 향해 가고 있을 때였다. 당시 구 소련 정부는 최재형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크게 꺼렸다고 했다.

그가 스탈린의 공산당과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으로 선생의 손자는 기억했다.

최 발렌틴은 주변에서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상당히 좋았던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제가 어르신들을 만났을 때 최재형의 손자라고 밝히니 다들 반가워했다"며 "그래도 모두가 최재형 선생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어 "역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왔을 때 그때서야 최재형 선생의 자녀인 올가 선생님이 많이 말씀해 주셨다"며 "그 덕분에 지금 한국과 러시아에 (최재형 선생 관련) 책이 나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우수리스크 최재형기념관에서 열린 최재형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한 그는 최근 10년간 조부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고 반겼다.

그는 "한국 정부 덕분에 최재형 선생이 유명 인사가 됐다.

많이 노력해 준 분들에게, 대한민국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1920년 일본군에 연행돼 총살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최재형 유해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최 발렌틴에게 선생의 시신을 찾을 길이 있는지 묻자 안타까운 답만 돌아왔다
"유해를 찾고자 많은 노력을 했어요.

우수리스크 감옥에서 숨진 뒤 감옥 주변 언덕에 던져졌다고 하는데요. 어디에 묻히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