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다른 판결이 인정한 사실도 별도심리 통해 판단해야"

"다툼없는 '현저한 사실' 아냐…따로 심리없이 판단하면 변론주의 위반"
다른 사건의 판결문에서 인정된 사실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현저한 사실'이 아니므로 재판부가 별도의 심리를 통해 사실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건 당사자가 다른 판결문에서 확정된 사실관계를 주장하거나 그 판결문을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법원이 이를 현저한 사실로 인정해 이를 전제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사자가 판결의 기초가 되는 사실과 증거의 수집을 책임진다'는 '변론주의'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김 모씨가 선박 건조회사인 A사를 상대로 낸 양수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 민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현저한 사실'이라고 본 판결문의 인정사실은 이 사건 1심 및 원심에서 판결문 등이 증거로 제출된 적이 없고 당사자도 이에 대해 주장한 바가 없다"며 "확정판결의 존재를 넘어서 그 판결의 이유를 구성하는 사실관계까지 현저한 사실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럼에도 원심은 당사자가 증거로 제출하지 않고 심리가 되지 않았던 각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만으로 판단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다수의 선박 건조회사를 운영하는 B씨가 법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채무를 갚지 않자, A사를 상대로 1억1천여만원을 대신 갚으라고 소송을 냈다.

김씨는 "A사는 B씨가 대표인 또 다른 회사가 설립한 회사로, A사가 B씨가 대표인 회사와 별개의 법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채무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A사도 사실상 B씨 소유의 회사이므로 채무를 대신 갚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1심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A사가 B씨의 채무를 대신 변제해야 할 책임을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A사가 당사자인 다른 사건의 판결문에서 인정된 'B씨가 A사를 설립한 뒤 조카를 통해 A사를 운영하기로 했다'는 사실 등을 '현저한 사실'로 인정해 A사가 B씨의 채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은 김씨의 주장처럼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김씨가 증거로 제출하지 않은 판결문에서 인정된 사실을 전제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변론주의 위반"이라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