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에 간편식, 변화하는 차례상…다듬고 굽는 것은 옛말

차례 없이 가족과 성묘나 여행…"제례의식보다 가족 관계가 더 중요"

곱게 빚은 송편, 빛깔 고운 식혜, 아이들에게 최고인기 동그랑땡.
주부 김경실(47)씨 집안 추석 차례상은 올해도 풍성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줄어든 차례상 준비 시간.
김씨는 "아직 대부분 음식은 직접 만들지만, 몇해 전부터 손이 많이 가는 송편과 식혜 등은 시중에 파는 것들로 마련했다"며 "집안 어른들께서 직장에 다니는 자녀들을 배려해 내린 결정이다"고 말했다.

남양주에 사는 박지영(42)씨 시댁 차례상에는 이번 추석에도 멜론과 바나나가 빠지지 않았다.

그는 "과일을 풍성하게 차리려다 보니 사과·배 말고도 올린다"며 "차례상에는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는 음식을 올리는 만큼 망고 같은 과일도 곧 오르지 않겠냐"고 했다.다양해진 먹거리와 바쁜 일상으로 차례상 짜임새가 변하고 있다.

14일 이마트에 따르면 전국 142개 매장에서 올해 추석 전 일주일간 판매한 자체 간편식 브랜드의 제사 음식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늘었다.

오색꾜지전, 모둠전 등 이마트 제사 음식 시리즈는 2014년 첫선을 보인 후 4년 만에 매출이 3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소고기 뭇국·냉동 산적 등 롯데마트 제수용 간편식도 해마다 20% 이상 급성장 중이다.

대구신세계백화점은 추석을 앞두고 멜론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41% 늘고 샤인머스켓 포도(청포도)는 두배 넘게 팔렸다.
이마트 만촌점 이준재 식품팀장은 "추석 상차림이 간소화, 간편화 추세여서 간편 가정식을 이용하는 고객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가족이 함께한다는 명절 의미만 남긴 집도 늘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친척이 모여 사는 이수연(43)씨는 추석에 가족이 성묘는 함께 가되 차례상을 안 차린 지는 올해가 6년째다.

이씨는 "제사는 기일에 지내고 추석에는 차례 없이 가족 모임을 한다"며 "가족이 함께한다는 의미를 살려 산소가 있는 여수로 성묘를 겸한 여행을 한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박지윤(55)씨도 "올해부터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추석에는 성묘만 하기로 했다"며 변화하는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현상은 명절 연휴 인천공항 이용객 수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설 연휴 이튿날인 2일, 인천공항에는 22만5천명이 몰려 개항 이래 하루 최다 이용객 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설 연휴 하루 평균 공항 이용객 수보다 6.1% 늘었다.

전국 14개 공항도 이용객이 3.9% 증가하며 붐볐다.허창덕 영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문화는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며 "핵가족화로 선조에 대한 제례 의식보다는 지금 함께 사는 가족과 추억이나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짙어진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