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김주원·이자람 "공허와 위로 전할 것"

오스카 와일드 소설 재해석
세계적인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유일한 장편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아름다움을 예술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던 와일드가 현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면 그는 어떤 '도리안'을 창조했을까. 지난 6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한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와일드가 2019년을 살고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제작진 면면은 화려하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만든 연출가 이지나를 필두로 작곡가 정재일, 현대무용가 김보라가 음악, 안무, 영상이 어우러지는 총체극의 기틀을 마련했다. 여기에 발레리나 김주원, 소리꾼 이자람,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 등이 배우로 합류했다.

원작에서 아름다운 청년 '도리안 그레이'는 화가인 '바질'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에 반해,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이 영원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까지 팔겠다는 맹세를 하게 된다.

'헨리 워튼 경'은 그의 욕망을 자극하며 타락의 길로 이끌고, 도리안 그레이는 점점 쾌락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작품은 이런 원작의 구성과 인물, 대사에서 주요 모티프만 따와 19세기 사교계 인물들을 21세기 예술가들로 재해석했다.

도리안 그레이는 천재적인 모던아트 작가 '제이드'로, 화가 바질은 사진작가 '유진'으로, 헨리 워튼 경은 제이드를 스타로 만드는 기획자 '오스카'로 재탄생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성별을 구분 짓지 않은 젠더 프리 캐스팅. 도리안 역은 여성 발레리나 김주원과 남성 배우 문유강이 번갈아 맡고, 유진 역도 여성 소리꾼 이자람과 남성 배우 박영수·신성민·연준석이 돌아가며 연기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든다. 도리안과 유진이 키스하는 장면에도 여러 배우의 조합이 있다.

17일 대학로에서 만난 김주원은 "이자람 씨와 공연할 때 정말 사랑하는 사이처럼 느껴진다는 관객 반응이 있었다.

인간 대 인간, 예술가 대 예술가로 만나다 보니 그게 가능하더라"고 말했다.

다양한 아티스트, 예술 장르와 협업을 이어온 그는 "국립발레단에 15년 있다가 퇴단한 지 어느새 7년이 지났다.

정통 클래식을 보여주는 역할은 지나갔고, 행정가가 되는 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작품을 많이 하고 싶었다"고 출연 이유를 설명했다.

총체극에서 또 하나 원작과 차별화한 부분은 제이드의 정신적 문제에 대한 묘사다.

소설에서 그는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나락에 떨어진다.

공연에서는 이를 극심한 우울증과 조증이 반복되는 양극성 장애로 대체한다.

이자람은 "솔직히 저는 제이드보다 유진에 가깝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이 전화를 잘 안 받거나 약속 장소에 재깍재깍 못 나오는 걸 이해 못 한다.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는다"고 농반진반 말문을 뗐다.

이어 "다만 연출가의 의도를 제대로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연출가가 그리는 그림에 가장 비슷하게 들어맞도록 노력했다"고 했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분명 가볍게 즐길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김주원과 이자람은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김주원은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느낄 법한 공허함과 외로움을 극대화해 보여드릴 것이다.

객석에 앉아계신 분들을 극한으로 몰아가기도 하겠지만, 그 후 위로가 전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자람은 "우리나라 관객은 드라마가 강한 작품을 좋아하시는데 이 작품이 그렇지는 않다.

대신 음악도, 조명도, 배우도 찰랑찰랑 꽉 차 있다.

이걸 염두에 두고 오신다면 각자 다른 의미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연은 11월 10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이어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