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물길 따라, 기찻길 따라 유유자적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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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섬진강 둘레길
전남 곡성에는 섬진강기차마을에서 압록유원지에 이르는 총 15㎞의 섬진강 둘레길이 있다. 구불구불 흐르는 푸른 섬진강을 따라 소나무와 편백 우거진 숲길, 열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기찻길을 걷는 구간이다.
찬란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산책하듯 슬렁슬렁 걷기 좋다. 곡성을 여행하는 방법은 증기기관차, 레일바이크, 드라이빙, 자전거, 걷기 등 무척 다채롭다. 공통점은 모두 섬진강 줄기를 따라가며 즐긴다는 점이다.
가족, 연인, 친구 등 함께한 사람의 체력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섬진강 둘레길은 시내·제방길(섬진강기차마을∼작은침실골, 3.2㎞), 숲공원길(작은침실골∼침곡역, 2.2㎞), 힐링숲길(침곡역∼가정역, 5.1㎞), 철로길(가정역∼이정마을, 2.1㎞), 강길(이정마을∼압록유원지, 2.4㎞) 등 5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다 걸을 필요는 없다.
발길 닿는 대로, 체력이 되는대로 걸으면 된다.
푸른 하늘은 높고 눈 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가을날, 섬진강 둘레길 탐방에 나섰다. 이곳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관광안내소의 추천에 따라 레일바이크가 출발하는 침곡역부터 보성강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압록유원지까지 구간을 선택해 걸었다.
이 길은 레일바이크와 증기기관차가 다니는 철길, 17번 국도, 자전거도로와 나란히 간다. ◇ 레일바이크, 증기기관차 함께 가는 길
힐링숲길 출발지인 침곡역에는 레일바이크가 손님을 기다리며 멈춰서 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질 무렵,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출발한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고 기적을 울리며 지난다.
꽤 낭만적인 풍경이다.
기관차 차창 속에서는 알록달록 멋을 부린 관광객들이 웃음을 띠고 손을 흔든다.
철길을 건너자 이정표가 힐링숲길 출발 지점을 알린다.
이정표에는 부모가 어린 자녀와 함께 걷는 그림 아래 '토닥토닥 걷는 길'이라 쓰인 표지판이 달렸다.
그만큼 가볍게 걸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선로 아래에 까는 목침목으로 조성한 계단을 오르자 이내 나무 그늘 싱그러운 숲길이 시작된다.
나뭇잎과 잔가지가 가득 쌓인 길은 솜이불 위를 딛는 듯 폭신하다.
길섶을 따라선 하얀 구절초꽃들이 바람에 기우뚱기우뚱 하늘거리며 인사를 건넨다.
길은 철길과 만났다가 헤어지길 반복하고 이파리 푸른 단풍나무 군락과 초록빛 송림으로 안내한다.
밑동 굵은 편백과 소나무, 대숲을 지나자 계곡 옆으로 1937년 건축된 밀양박씨 문중의 제실(祭室)인 영사재(永思齋)가 고개를 내민다.
돌담 바깥에는 봉황이 깃든다는 벽오동나무가 푸르고 곧은 줄기를 하늘 높이 뻗고 있다.
한쪽엔 선 커다란 은행나무의 자태는 무척이나 늠름하고 올곧다.
영사재 뒤편 계곡을 건너자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기찻길과 도로가 보이고 그 뒤로 섬진강 푸른 줄기가 유유히 흐른다.
레일바이크가 하나둘씩 지나고 한참 후,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레일 위를 달린다. 언덕 위에 들어선 작고 예쁜 교회를 지나자 길은 다시 깊은 숲속으로 이어진다.
숲길 한쪽엔 '마천목'이란 제목의 안내판이 서 있다.
마천목은 조선 태조 때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이곳에는 그와 도깨비살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
마천목은 어릴 적 병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섬진강에 물고기를 잡으러 왔다가 푸른빛이 도는 돌을 주웠다.
그날 밤, 도깨비들이 몰려와 두목을 돌려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했다.
그 돌은 바로 도깨비들의 두목이었다.
마천목은 어살을 만들어달라고 했고, 마침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강 건너편엔 한 손에 긴 창을, 다른 손에 도끼를 치켜든 도깨비천왕상이 서 있다.
동상 뒤편 숲속엔 다양한 모습의 도깨비를 만날 수 있는 도깨비마을이 있다.
우물터를 지난 후 '전망대' 이정표를 보고 잠시 코스에서 벗어나 언덕 위로 향했다.
강줄기 구불거리는 수려한 풍광을 기대하며 팔각정에 올랐지만 웃자란 나무가 시야를 가로막아 보이는 것이라고는 푸른 하늘과 산줄기, 약간의 강줄기 조각뿐이었다.
발길을 되돌려 조금 걷자 시야가 탁 트인 시원스러운 풍광이 펼쳐진다.
철길에는 하늘색, 주황색 레일바이크가 지나고 도로 뒤로는 푸른 강이 흐른다.
길은 코스모스 흐드러진 철길 건너편으로 이어졌다 다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넘자 드디어 힐링숲길의 종착지인 가정역이다. ◇ 수려한 풍광 펼쳐지는 출렁다리
가정역은 증기기관차가 막 도착한 탓에 여행객으로 북적거린다.
수많은 여행객의 발길은 모두 기차역 앞에 놓인 길이 200m의 섬진강 출렁다리로 향한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강 풍경이 무척 시원스럽다.
강물 위 상공을 집라인 외줄에 매달려 날듯이 건너는 이들도 볼 수 있다.
강 건너편엔 청소년수련원과 섬진강 천문대가 자리하고 있다.
발길을 돌려 가정역으로 돌아와 다음 구간인 철로길을 걷는다.
이 길은 1999년까지 익산과 여수를 잇던 전라선 구간의 일부다.
그야말로 철길을 원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기찻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탓인지 풀이 무성하다.
이정마을 인근을 지나자 철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통 풀이다.
똬리를 튼 뱀이라도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도로로 내려섰다.
마지막 구간은 강길이다.
섬진강을 가까이에서 보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길은 대나무숲과 돌길을 지나고 마침내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류하는 압록에서 끝이 난다.
보성강을 가로지르는 압록교 아래 강변에선 휴일을 맞아 찾아온 이들이 낚시하거나 걸으며 평온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압록에서 자동차를 세워둔 침곡역까지는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군내버스(일반 1천원, 중·고생 800원, 초등학생 500원)를 이용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지금까지 걸었던 풍경이 영화필름을 되돌리듯 스쳐 지난다.
침곡역까지는 불과 10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힐링 숲길을 따라선 단풍나무가 꽤 많다.
곡성은 11월이 본격적인 단풍철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
전남 곡성에는 섬진강기차마을에서 압록유원지에 이르는 총 15㎞의 섬진강 둘레길이 있다. 구불구불 흐르는 푸른 섬진강을 따라 소나무와 편백 우거진 숲길, 열차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기찻길을 걷는 구간이다.
찬란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산책하듯 슬렁슬렁 걷기 좋다. 곡성을 여행하는 방법은 증기기관차, 레일바이크, 드라이빙, 자전거, 걷기 등 무척 다채롭다. 공통점은 모두 섬진강 줄기를 따라가며 즐긴다는 점이다.
가족, 연인, 친구 등 함께한 사람의 체력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섬진강 둘레길은 시내·제방길(섬진강기차마을∼작은침실골, 3.2㎞), 숲공원길(작은침실골∼침곡역, 2.2㎞), 힐링숲길(침곡역∼가정역, 5.1㎞), 철로길(가정역∼이정마을, 2.1㎞), 강길(이정마을∼압록유원지, 2.4㎞) 등 5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다 걸을 필요는 없다.
발길 닿는 대로, 체력이 되는대로 걸으면 된다.
푸른 하늘은 높고 눈 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가을날, 섬진강 둘레길 탐방에 나섰다. 이곳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관광안내소의 추천에 따라 레일바이크가 출발하는 침곡역부터 보성강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압록유원지까지 구간을 선택해 걸었다.
이 길은 레일바이크와 증기기관차가 다니는 철길, 17번 국도, 자전거도로와 나란히 간다. ◇ 레일바이크, 증기기관차 함께 가는 길
힐링숲길 출발지인 침곡역에는 레일바이크가 손님을 기다리며 멈춰서 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질 무렵,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출발한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고 기적을 울리며 지난다.
꽤 낭만적인 풍경이다.
기관차 차창 속에서는 알록달록 멋을 부린 관광객들이 웃음을 띠고 손을 흔든다.
철길을 건너자 이정표가 힐링숲길 출발 지점을 알린다.
이정표에는 부모가 어린 자녀와 함께 걷는 그림 아래 '토닥토닥 걷는 길'이라 쓰인 표지판이 달렸다.
그만큼 가볍게 걸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선로 아래에 까는 목침목으로 조성한 계단을 오르자 이내 나무 그늘 싱그러운 숲길이 시작된다.
나뭇잎과 잔가지가 가득 쌓인 길은 솜이불 위를 딛는 듯 폭신하다.
길섶을 따라선 하얀 구절초꽃들이 바람에 기우뚱기우뚱 하늘거리며 인사를 건넨다.
길은 철길과 만났다가 헤어지길 반복하고 이파리 푸른 단풍나무 군락과 초록빛 송림으로 안내한다.
밑동 굵은 편백과 소나무, 대숲을 지나자 계곡 옆으로 1937년 건축된 밀양박씨 문중의 제실(祭室)인 영사재(永思齋)가 고개를 내민다.
돌담 바깥에는 봉황이 깃든다는 벽오동나무가 푸르고 곧은 줄기를 하늘 높이 뻗고 있다.
한쪽엔 선 커다란 은행나무의 자태는 무척이나 늠름하고 올곧다.
영사재 뒤편 계곡을 건너자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기찻길과 도로가 보이고 그 뒤로 섬진강 푸른 줄기가 유유히 흐른다.
레일바이크가 하나둘씩 지나고 한참 후,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레일 위를 달린다. 언덕 위에 들어선 작고 예쁜 교회를 지나자 길은 다시 깊은 숲속으로 이어진다.
숲길 한쪽엔 '마천목'이란 제목의 안내판이 서 있다.
마천목은 조선 태조 때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이곳에는 그와 도깨비살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
마천목은 어릴 적 병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섬진강에 물고기를 잡으러 왔다가 푸른빛이 도는 돌을 주웠다.
그날 밤, 도깨비들이 몰려와 두목을 돌려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했다.
그 돌은 바로 도깨비들의 두목이었다.
마천목은 어살을 만들어달라고 했고, 마침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강 건너편엔 한 손에 긴 창을, 다른 손에 도끼를 치켜든 도깨비천왕상이 서 있다.
동상 뒤편 숲속엔 다양한 모습의 도깨비를 만날 수 있는 도깨비마을이 있다.
우물터를 지난 후 '전망대' 이정표를 보고 잠시 코스에서 벗어나 언덕 위로 향했다.
강줄기 구불거리는 수려한 풍광을 기대하며 팔각정에 올랐지만 웃자란 나무가 시야를 가로막아 보이는 것이라고는 푸른 하늘과 산줄기, 약간의 강줄기 조각뿐이었다.
발길을 되돌려 조금 걷자 시야가 탁 트인 시원스러운 풍광이 펼쳐진다.
철길에는 하늘색, 주황색 레일바이크가 지나고 도로 뒤로는 푸른 강이 흐른다.
길은 코스모스 흐드러진 철길 건너편으로 이어졌다 다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넘자 드디어 힐링숲길의 종착지인 가정역이다. ◇ 수려한 풍광 펼쳐지는 출렁다리
가정역은 증기기관차가 막 도착한 탓에 여행객으로 북적거린다.
수많은 여행객의 발길은 모두 기차역 앞에 놓인 길이 200m의 섬진강 출렁다리로 향한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강 풍경이 무척 시원스럽다.
강물 위 상공을 집라인 외줄에 매달려 날듯이 건너는 이들도 볼 수 있다.
강 건너편엔 청소년수련원과 섬진강 천문대가 자리하고 있다.
발길을 돌려 가정역으로 돌아와 다음 구간인 철로길을 걷는다.
이 길은 1999년까지 익산과 여수를 잇던 전라선 구간의 일부다.
그야말로 철길을 원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기찻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탓인지 풀이 무성하다.
이정마을 인근을 지나자 철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통 풀이다.
똬리를 튼 뱀이라도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도로로 내려섰다.
마지막 구간은 강길이다.
섬진강을 가까이에서 보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길은 대나무숲과 돌길을 지나고 마침내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류하는 압록에서 끝이 난다.
보성강을 가로지르는 압록교 아래 강변에선 휴일을 맞아 찾아온 이들이 낚시하거나 걸으며 평온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압록에서 자동차를 세워둔 침곡역까지는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군내버스(일반 1천원, 중·고생 800원, 초등학생 500원)를 이용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지금까지 걸었던 풍경이 영화필름을 되돌리듯 스쳐 지난다.
침곡역까지는 불과 10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힐링 숲길을 따라선 단풍나무가 꽤 많다.
곡성은 11월이 본격적인 단풍철이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