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쪽 방언사전 쓴 곽충구 교수 "사람이 할 일 아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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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두만강 유역 8개 지점서 조선어 조사해 노작 출간
"함경도 육진방언, 200∼300년전 서울말과 유사…기록 필요성 있어" 2013년 국내에 출간된 일본소설 '배를 엮다'는 사전을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고되고 정성을 필요로 하는지 묘사한 작품이다. 오랜 기간이 걸리는 종이사전 편찬은 바다에 띄울 튼튼한 배를 짓는 일만큼 힘들다.
얼마 전 도서출판 태학사로부터 4천256쪽 분량 '두만강 유역의 조선어 방언 사전'이 출간됐다는 전자메일이 도착했다.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23년간 조사한 연구 성과를 담았다는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엮은이는 국어학자인 곽충구(69) 서강대 명예교수였다.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곽 교수 자택으로 찾아가니 마루 서고에 책이 가득했다.
그는 손수 깎은 사과와 음료수를 건네며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용례에도 성조를 표시하느라 맨날 밤을 새웠습니다.
어떨 때는 뜻풀이가 명확하게 안 돼 몇 시간을 보냈어요.
죽을 노릇이었죠. 처음에는 5년, 10년이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부인과 해외에 같이 나간 본 게 딱 한 번입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한 거예요.
미쳤던 거죠."
곽 교수가 보여준 두 권짜리 사전은 실로 두툼했다.
책에 담긴 표제어는 약 3만2천개. 각각의 단어에는 성조, 뜻풀이, 품사, 용례, 관용구 등 각종 정보를 수록했다.
무엇보다 용례가 매우 풍부한 점이 특징으로, 곽 교수가 조사 과정에서 채록한 문장을 대부분 써넣었다.
사전이라고 하면 언어학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두만강 방언 사전은 인류학자나 민속학자, 지리학자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학술서다.
음식, 의복, 통과의례, 세시풍속, 친족 명칭 등에 대한 표제어를 빠짐없이 넣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랖떡에 대해 "차좁쌀가루나 차수수가루에 좁쌀이나 핍쌀(피) 가루를 섞어서 반죽한 다음 떡갈나무, 피나무, 옥수수, 깨의 잎에 싸서 솥에 찐 떡. 대개 오뉴월, 특히 복날에 해 먹는다"고 설명했다.
충남 아산 출신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곽 교수는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사에 참여하면서 방언 연구를 시작했다.
조사는 가방을 들고 다니며 시골 양반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그는 "어떻게 우리말이 역사적으로 지역에 따라 분화됐는지에 관심이 있었다"며 "방언에는 옛날 말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국어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나온 19세기 한국어 자료를 바탕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북한 지역 방언이 자연스럽게 그의 전공 분야가 됐다.
대한민국학술원이 만든 '한국 언어 자료집'에서 북한 지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곽 교수가 1990년대 중반 중국 지린성 조선족자치주 두만강 북쪽 유역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조사 대상으로 삼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는 "두만강 중·하류 지역 육진방언(함경북도 북부 회령·종성·온성·경원·경흥에서 쓰는 하위 방언)은 200∼300년 전 서울말과 매우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아오지', '짧다', '사과'는 조사 지역에서 각각 '아오디', '댜르다', '샤괘'라고 발음했다.
이어 "조선족이 모국어와 전통문화를 빠르게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다"며 "조선어와 만주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와 관계를 파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조사는 북한이 보이는 두만강 유역 마을을 중심으로 8개 지점에서 했다.
본적지가 같은 사람이 모여 살고 한민족 전통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된 곳에서 고령의 함경도 이주민이나 이주민 후손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방언을 말해준 제보자는 중앙아시아 이주민을 포함해 50명 남짓이었다.
그는 안식년이 돌아올 때마다 중국으로 향했고, 방학에도 현지조사를 했다.
녹음한 자료를 국제음성기호로 전사(轉寫)하고, 표제어별 미시 정보를 추가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곽 교수는 "처음에는 특무, 즉 간첩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고 말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어르신 다리도 주무르고 현지 사투리를 쓰려고 노력하면서 친해졌다"며 "나중에는 남조선에서 같은 민족 동무가 왔다고 두만강에서 잡은 고기와 술, 떡으로 잔치를 해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중반에는 조사 지역이 우리나라 1960년대 같았지만, 사람들 심성은 정말 순후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만난 탈북자들 사정이 좋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조사 초기에는 조선족 조사자 집에 몰래 찾아온 탈북 여성에게 슬며시 돈을 쥐여주기도 했다.
노작을 완성한 곽 교수는 기력이 다했다면서도 "논문 쓸 것이 조금 있다"며 "방언 분화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다른 국어학자에게 사전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들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는 "사전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소개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소강춘 국립국어원장은 1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간행된 방언 사전과는 수준이 다른 저작으로, 앞으로는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국어학계 방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곽 선생님 전에 책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이전에 출판된 방언 사전은 보통 어휘를 대조하는 데에 그쳤습니다.
예컨대 전라도 방언 사전이면 '빨리'는 '후딱'과 연결 짓는 식이었죠. 그런데 곽충구 선생님은 방언의 미세한 의미 차이를 밝혔고, 다양한 용례를 제시했습니다.
그 수고라는 게 일반적 사전 연구의 10배 이상은 됐을 겁니다.
대단한 업적입니다. "
/연합뉴스
"함경도 육진방언, 200∼300년전 서울말과 유사…기록 필요성 있어" 2013년 국내에 출간된 일본소설 '배를 엮다'는 사전을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고되고 정성을 필요로 하는지 묘사한 작품이다. 오랜 기간이 걸리는 종이사전 편찬은 바다에 띄울 튼튼한 배를 짓는 일만큼 힘들다.
얼마 전 도서출판 태학사로부터 4천256쪽 분량 '두만강 유역의 조선어 방언 사전'이 출간됐다는 전자메일이 도착했다.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23년간 조사한 연구 성과를 담았다는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엮은이는 국어학자인 곽충구(69) 서강대 명예교수였다.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곽 교수 자택으로 찾아가니 마루 서고에 책이 가득했다.
그는 손수 깎은 사과와 음료수를 건네며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용례에도 성조를 표시하느라 맨날 밤을 새웠습니다.
어떨 때는 뜻풀이가 명확하게 안 돼 몇 시간을 보냈어요.
죽을 노릇이었죠. 처음에는 5년, 10년이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부인과 해외에 같이 나간 본 게 딱 한 번입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한 거예요.
미쳤던 거죠."
곽 교수가 보여준 두 권짜리 사전은 실로 두툼했다.
책에 담긴 표제어는 약 3만2천개. 각각의 단어에는 성조, 뜻풀이, 품사, 용례, 관용구 등 각종 정보를 수록했다.
무엇보다 용례가 매우 풍부한 점이 특징으로, 곽 교수가 조사 과정에서 채록한 문장을 대부분 써넣었다.
사전이라고 하면 언어학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두만강 방언 사전은 인류학자나 민속학자, 지리학자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학술서다.
음식, 의복, 통과의례, 세시풍속, 친족 명칭 등에 대한 표제어를 빠짐없이 넣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랖떡에 대해 "차좁쌀가루나 차수수가루에 좁쌀이나 핍쌀(피) 가루를 섞어서 반죽한 다음 떡갈나무, 피나무, 옥수수, 깨의 잎에 싸서 솥에 찐 떡. 대개 오뉴월, 특히 복날에 해 먹는다"고 설명했다.
충남 아산 출신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곽 교수는 1979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사에 참여하면서 방언 연구를 시작했다.
조사는 가방을 들고 다니며 시골 양반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그는 "어떻게 우리말이 역사적으로 지역에 따라 분화됐는지에 관심이 있었다"며 "방언에는 옛날 말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국어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나온 19세기 한국어 자료를 바탕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북한 지역 방언이 자연스럽게 그의 전공 분야가 됐다.
대한민국학술원이 만든 '한국 언어 자료집'에서 북한 지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곽 교수가 1990년대 중반 중국 지린성 조선족자치주 두만강 북쪽 유역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조사 대상으로 삼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는 "두만강 중·하류 지역 육진방언(함경북도 북부 회령·종성·온성·경원·경흥에서 쓰는 하위 방언)은 200∼300년 전 서울말과 매우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아오지', '짧다', '사과'는 조사 지역에서 각각 '아오디', '댜르다', '샤괘'라고 발음했다.
이어 "조선족이 모국어와 전통문화를 빠르게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다"며 "조선어와 만주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와 관계를 파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조사는 북한이 보이는 두만강 유역 마을을 중심으로 8개 지점에서 했다.
본적지가 같은 사람이 모여 살고 한민족 전통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된 곳에서 고령의 함경도 이주민이나 이주민 후손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방언을 말해준 제보자는 중앙아시아 이주민을 포함해 50명 남짓이었다.
그는 안식년이 돌아올 때마다 중국으로 향했고, 방학에도 현지조사를 했다.
녹음한 자료를 국제음성기호로 전사(轉寫)하고, 표제어별 미시 정보를 추가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곽 교수는 "처음에는 특무, 즉 간첩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고 말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어르신 다리도 주무르고 현지 사투리를 쓰려고 노력하면서 친해졌다"며 "나중에는 남조선에서 같은 민족 동무가 왔다고 두만강에서 잡은 고기와 술, 떡으로 잔치를 해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중반에는 조사 지역이 우리나라 1960년대 같았지만, 사람들 심성은 정말 순후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만난 탈북자들 사정이 좋지 않아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조사 초기에는 조선족 조사자 집에 몰래 찾아온 탈북 여성에게 슬며시 돈을 쥐여주기도 했다.
노작을 완성한 곽 교수는 기력이 다했다면서도 "논문 쓸 것이 조금 있다"며 "방언 분화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다른 국어학자에게 사전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들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는 "사전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소개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소강춘 국립국어원장은 1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간행된 방언 사전과는 수준이 다른 저작으로, 앞으로는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국어학계 방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곽 선생님 전에 책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이전에 출판된 방언 사전은 보통 어휘를 대조하는 데에 그쳤습니다.
예컨대 전라도 방언 사전이면 '빨리'는 '후딱'과 연결 짓는 식이었죠. 그런데 곽충구 선생님은 방언의 미세한 의미 차이를 밝혔고, 다양한 용례를 제시했습니다.
그 수고라는 게 일반적 사전 연구의 10배 이상은 됐을 겁니다.
대단한 업적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