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먹었던 어란 못 잊어…지리산서 숭어알 말리죠"

'양재중 어란' 양재중 셰프

숭어알 말려 문배주로 닦아
기업 회장들이 찾는 깔끔한 맛
어란(魚卵)은 귀한 음식이다. 숭어, 민어 등 생선알의 핏물을 완전히 빼고 염장해 바람에 말리는 ‘시간의 맛’이다. 한국 일본 대만은 물론 유럽에서도 진미로 꼽힌다. 일본에선 ‘카라스미’로, 지중해 연안에서는 ‘보타르가’로 불린다.

어란 명인 가운데 ‘양재중’(사진)이라는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양재중 셰프는 특급호텔과 일식 레스토랑 셰프를 그만두고 홀연히 지리산으로 떠나 순수하고 깨끗한 맛의 어란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최근 서울 연희동에 ‘가을 어란’을 들고 나타났다. 요리연구가가 운영하는 ‘메이스튜디오’에서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 시식회를 열었다.

어란에 왜 빠져들었냐는 질문에 그는 “열여덟 살 호텔 주방 막내 시절 비싼 도시락에 손톱만큼 올라가던 어란을 몰래 먹곤 했다”며 “그 작은 조각에 담긴 수많은 맛을 못 잊겠더라”고 했다. 25세 때 타워호텔 최연소 총주방장에 오른 그는 더 배우고 싶다며 일본으로 떠났다. 8년간 설거지와 재료 다듬기부터 시작해 수련했고, 최고의 맛을 찾아 헤맸다.

미식이 발달한 일본에서도 어란, 해삼창자, 성게알 등은 3대 진미로 꼽힌다. 일본에서 어란 연구를 하고 돌아와 국내에서 안즈, 타츠미스시 등 고급 일식당에서 일했다. 제철 숭어의 알을 염장하고 말리면 기업 회장 등 단골손님들이 매년 그의 어란을 찾았다.그는 봄과 가을에 만든 어란을 소개했다. 봄에 잡히는 참숭어는 진흙뻘에서 나와 살이 기름지고 알도 더 눅진하다. 가을부터 겨울철 강 하구에서 잡히는 가숭어는 담백하고 깔끔하다.

양 셰프는 좋은 재료를 쓴다. 참숭어의 산란기인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는 수산시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봄에 1t, 가을에 1t 정도의 알을 공수해 실핏줄을 예리한 칼 등으로 모두 제거한다. 소금에 파묻어 길게는 네 시간까지 절인 뒤 2주에서 3개월간 말린다. 그는 “아침저녁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가며 매일 애지중지 말려야 하는 작업”이라며 “첨가물 없이 50번 정도 문배주로만 닦아낸다”고 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