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고의 성능 저하' 손배소에 원고 200명 출석 '진풍경'

재판부 인감증명서 요구에 소송 위임 구두 진술하고자 법정 찾아
애플을 상대로 한 '아이폰 업데이트 고의 성능 저하' 손해배상 소송 첫 재판이 열린 12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복도에는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줄지어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들은 이번 소송의 원고들로, 법무법인 한누리에 소송 대리를 위임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에 직접 출석한 것이다.

이번 재판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1부(조미옥 부장판사)는 앞서 원고 측 소송대리인에게 보정 명령을 내렸다.

소송에 참여한 원고 6만여명으로부터 대리권을 위임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법률 대리인이 원고 전원의 인감증명서를 받아 제출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한국은 대표자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함께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 피해 구제를 받고자 하는 당사자는 모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또, 원고가 다수인 소송에서 대리인은 당사자 전원으로부터 소송 위임을 받았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 때문에 소송 위임 계약서에 인감도장이 아닌 막도장으로도 날인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재판부는 이를 문제 삼지 않으나 이번 소송의 경우 원고 수가 너무 많다 보니 이들 전체에 대한 소송 대리가 맞는지 입증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원고 대리인인 법무법인 한누리의 한 변호인은 "원고들이 계약서를 등록할 때 공인인증 혹은 휴대전화 인증을 하도록 하고, 그 명단을 법원에 제출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누리 측은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원고들에게 인감증명서를 요구했으나 인감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고, 등록 절차도 번거로워 6만여명 중 약 6천600명 밖에 인감증명서를 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누리 측은 인감증명서를 내달라고 공지하면서 법정 출석이 가능한 원고의 경우 직접 법원에 나와 소송 대리 위임을 입증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소송의 직접 당사자가 법정에서 소송 대리권을 위임한다고 구두로 진술하는 방법으로도 위임이 인정된다.

이날 법원 복도를 가득 메운 원고들은 이 방법으로 소송 대리권을 위임하기 위해 법정을 찾은 것이다.

재판부는 법정이 비좁아 원고들이 모두 들어오지 못하자 난색을 보이며 대리인 측에 밖에서 원고 명단을 작성해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200명가량의 원고들은 복도에 줄지어 서서 1시간에 걸쳐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명단에 적었다.

재판부는 이 명단을 받아 일일이 원고들의 이름을 부르며 실제 출석 여부와 대리권을 위임한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답이 없는 원고에 대해서는 법정 경위들이 복도에서 다시 원고 이름을 외치며 찾기도 했다.

변호인은 "원고가 많은 소송에서 인감증명서를 제출하라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인감증명서 제출이 여의치 않은 의뢰인들은 직접 법정에 출석해도 된다고 안내했으나 이처럼 많은 분이 찾아주실지는 예상 못 했다"고 전했다.

오전 10시 10분 시작으로 예정됐던 재판은 원고 확인이 모두 끝난 11시 45분께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재판부는 심리에 앞서 "미리 피고 측과 협의하고 재판부에 의견을 줬으면 기일을 오후로 잡는 등 대비를 했을 것"이라며 "집단 소송을 많이 해봤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당혹감을 전했다.

심리는 20분 만에 마무리됐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에 대해 신청한 문서목록 제출명령과 관련, 그 범위를 한정해 다시 내달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