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무대 뒤 솔직 인터뷰…"은퇴 투어 하고 싶었다"

"바둑의 기본 가르쳐주신 아버지, 정말 좋은 스승님이셨다"
인공지능(AI) 한돌과의 대국을 끝으로 바둑판을 떠난 이세돌(36) 9단.
마지막 대국은 21일 고향인 전남 신안 엘도라도리조트에서 어머니와 형, 누나 등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했다. 치수고치기 3번기로 열린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 대국에서 이세돌은 1승 2패를 거뒀다.

3국 패배 후 이세돌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판 잘 즐기다 갑니다", "좋았던 모습으로 기억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무대에서 퇴장했다.

무대 뒤에서 이세돌을 잠시 만났다. 이세돌은 3국에서 한돌에 패한 직후여서 그런지 바둑 내용을 계속 곱씹고 있었다.

그는 "초반에 선택의 갈림길이 있었는데, '확실한 쪽'이 아닌 '조금 더 재밌는 쪽'으로 갔다.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마지막 판답게 둔 것 같다. 원 없이 둬서 후회는 남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세돌은 지난 7월 이후로 대국 기회가 없어 "우울했다"고 털어놓으면서 이런 은퇴 대국을 하게 돼서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이세돌이 은퇴 결심을 밝힌 것은 올해 3월 중국 커제 9단과 3·1절 기념 대국을 마치고서다. 그는 "올해까지 활동하고 장기 휴직이나 은퇴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이세돌은 "사실 은퇴 이야기는 2016년 말부터 했었다.

2018년에도 은퇴를 생각하다가 시기를 놓쳤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려고 했다.

3월에 공식적으로 말하고 9∼10개월 동안 제대로 정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기사로서 24년 5개월 동안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장소를 다시 찾으면서 바둑 인생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세돌은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까지도 가서, 두고 싶은 상대와 기념 대국 형태로 두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가 솔직히 있었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프로기사회 탈퇴 문제로 한국기원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7월부터 이세돌이 대국에 전혀 나서지 못한 것은 '기사회 소속 기사만 한국기원 주최·주관·협력·후원 기전에 출전할 수 있다'는 한국기원 규정이 신설됐기 때문이었다.

이세돌은 "저는 어차피 몇개월 후에 은퇴할 것인데 '굳이 그렇게 하나' 생각이 들었다.

떠나겠다는 사람을 그렇게 한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정말 유감이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세돌은 어려운 상황에서 한돌과 은퇴 대국을 한 것에 감사하다면서 "NHN에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 같아서 죄송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세돌은 기자회견에서 한돌이 아직 중국 인공지능과 비교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제가 중국, 일본에 가서 바둑을 둘 것이라는 말이 있더라. 그럴 거면 제가 은퇴를 안 한다"라고 웃으면서 "진짜 공식 대국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세상일은 모르니 50살이 되면 다시 바둑을 둘까 모르겠다.

최소한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둑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이세돌은 아버지 고(故) 이수오 씨께 바둑을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9살까지 아버지 밑에서 배웠다.

기본이 중요한데, 힘든 와중에서도 기본을 잘 잡아주셔서 제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않았나"라며 "부모-자식 간의 당연한 이야기는 안 하더라도, 바둑에서는 정말 좋은 스승님이 아니셨나"라고 기억했다.

이세돌은 "어찌 됐든 마지막이니 좀 울컥하네요"라며 "마지막은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의미가 아무래도 남다르지 않나"라며 미소를 지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