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 전성기 주역들의 퇴장이 남긴 메시지

김용준의 생각노트

전쟁 직후 지방서 태어나
평생 한 직장에 다닌 공통점
실력과 도전정신으로 CEO 올라
한국사회 역동성의 산 증인들
이동호 현대백화점 부회장, 이원준 롯데쇼핑 부회장, 이갑수 이마트 사장.

올 연말 무대에서 내려온 유통업계 거물들입니다. 10년 가까운 시간 한국 유통산업을 이끌어온 이들의 퇴장 소식을 듣고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가 궁금해졌습니다. 프로필을 뒤적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삶 자체가 메시지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평생을 한 직장에서

세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이원준 부회장과 이동호 부회장은 1956년생, 이갑수 사장은 1957년생. 전쟁 직후였습니다. 모두 지방 출신이란 것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충북 청원(이원준), 전남 나주(이동호), 경남 울산(이갑수)이 그들의 고향입니다. 그 시절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보낸 유년기는 간단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1960년대 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였습니다. 생존이 시대정신이었던 때 그들은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려운 시절은 아마도 그들에게 잡초 같은 생존의 힘을 선물로 줬을 것입니다.

힘든 환경에도 그들은 꿈을 꿨던 것 같습니다. 모두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갑수 사장은 서울(경희대)로 왔습니다. 이원준 부회장은 청주대, 이동호 부회장은 조선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진학률이 30% 안팎이었던 때였습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대학을 가고, 서울로 올라가 다른 삶을 살아보자’ 정도의 꿈은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더 큰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지만.그들은 각각 현대 롯데 신세계에 입사했습니다. 취업해 한 직장에서만 30년 넘게 일한 끝에 최고경영자(CEO)에 올랐습니다. 평생직장 시대의 수혜일 수 있고, 사생활을 생략한 헌신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들이 CEO가 되는 과정은 순조로웠을까라는 의문이 머리를 내밉니다. 험했겠지요. 속칭 명문대 출신도 아닌, 촌에서 올라온 그들이 국내 최대 유통그룹 CEO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을지는 자신들만 알 것입니다.

검투사였던 이들CEO가 된 뒤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원준 부회장은 2012년부터 2년간 면세점 대표를 지냈습니다. 롯데면세점을 세계 2위로 도약하게 한 주역이었습니다. 롯데백화점 대표도 3년 했습니다. 아울렛과 미니백화점 등을 통해 닫혀 있던 백화점의 성장판을 다시 열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리테일은 곧 디테일이다”란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현대맨 이동호 부회장도 신중한 스타일과 달리 비즈니스는 공격으로 일관했습니다. 한섬, 리바트가구, SK네트웍스 패션부문, 한화L&C. 그가 CEO로 있는 동안 사들인 업체입니다. 또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고, 렌털사업 진출을 주도한 것도 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내 능력 밖의 일은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이갑수 이마트 사장은 임원 시절 탁월한 마케팅으로 월마트 카르푸 등 세계적 대형마트와 싸웠습니다. 이들은 결국 한국에 자리 잡지 못하고 철수했습니다. 시장을 지킨 주역 가운데 한 명입니다. 대형마트가 성장을 멈추자 그는 트레이더스 일렉트로마트 등 전문점 사업의 씨를 뿌렸습니다.역동성의 상징

그들은 기업 오너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너들과 함께 미래를 설계한 전략가였습니다. 또 전략을 현실로 만든 실행가이기도 했습니다. 닥쳐오는 도전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외국계의 공격에는 적극적인 가격 및 매장 정책으로 맞섰고, 정체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내놓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또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무대 뒤로 물러났습니다. 후배들에게는 “시대와의 마찰을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은퇴한 경영자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지방대를 나왔어도,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도, 특정 지역 출신이어도 CEO가 될 수 있는 사회. 실력과 도전정신을 사회의 역동성이 성공으로 전환시켜주는 그런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그곳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제2의 이원준, 제2의 이동호, 제2의 이갑수를 기대하며.

생활경제부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