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제철 사업 원했지만…꿈 접었던 신격호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일화 소개 "일본서 번 돈 2.5배 한국에 투자"

롯데그룹 창업자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한국에서 하고 싶었던 사업은 정유와 제철 사업이었다고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부회장)가 20일 소개했다. 황 부회장은 이날 신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신 명예회장이) '정부에 정유사업을 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아쉽게도 롯데가 되지 않고 LG가 가져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신 명예회장이) 그 뒤에는 제철 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제철소를 세우고 싶었던 꿈도 이뤄지지 않았다. 황 부회장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롯데는 제철 사업을 하기 위해 50명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정부에 제안했지만, 제철 사업은 국가 주도로 해야 한다는 정부 결정에 무산됐다고 한다.

황 부회장은 "TF 50명이 검토했던 사업 보고서를 그대로 정부에 준 것 같다.

아무래도 포항제철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신 명예회장은 서로 가까운 사이였다.

정유 사업과 제철 사업 계획이 모두 무산된 후 등장한 프로젝트가 소공동 롯데호텔과 쇼핑센터다.

황 부회장은 롯데백화점이 롯데쇼핑으로 이름 붙여진 비화도 소개했다. 당시 일본 자금으로 투자한 법인이어서, 외국 법인은 소매업을 못 하게 돼 있는 외국인투자법에 따라 백화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소공동 롯데 쇼핑센터와 호텔 건립에는 당시 돈으로 4억달러가 투자됐다.

황 부회장은 "당시 경부고속도로 준공 금액과 맞먹는 규모"라며 "1978년 기록에 의하면 당시 국내 외국인 직접투자의 70%가 롯데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롯데가 일본에서 설립된 이후 1970년대까지 벌어들인 자기자본이 170억엔 정도인데 당시 한국에 투자한 돈이 400억엔"이라면서 "모아 놓은 돈의 2.5배를 한국에 투자한 셈인데, 이는 상당한 도전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신 명예회장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건물을 짓고자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월드타워다.

황 부회장은 "명예회장께 '100층 이상 건물은 건축비가 많이 들고 채산성이 없으니 아파트를 지으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신 명예회장은 '경제성은 좋을지 모르지만,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에 방문했을 때 고궁만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역작을 남기고 싶었던 꿈이 있으셨던 것 같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황 부회장은 고인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말이 '도전'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신 명예회장은) 창업은 창조다.

도전을 멈추면 기업은 멈춤(그만)이다.

일하는 방식은 몰라도 되지만, 열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황 부회장은 신 명예회장이 유언을 남겼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가족끼리 의논해서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옆에 나란히 앉아 있으니 교감하지 않겠냐"며 여지를 남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