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는데 헛고생시키다니…" 또 실망 안겨준 마스크 행정(종합)

우체국, 농협 등 찾았다가 허탕…3월 2일 이후 판매 안내에 분통
정부 "수급 불안 여전해 국민께 죄송…하루 이틀 더 시간 소요"
"분명 오늘부터 마스크 살 수 있다더니…"
27일 우체국과 농협, 약국 등에서 마스크를 살 수 있다는 정부의 발표를 믿고 공적 판매처를 찾았던 시민들은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당초 이날부터 마스크 물량이 대거 풀린다고 알려지며 전국에 있는 우체국과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는 개점 전부터 마스크를 구매하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4인 가족이 쓸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이날 오전 부산 부산진구 한 우체국을 들렀던 주부 A 씨도 우체국 입구에 붙여놓은 안내문을 보고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체국 입구에는 마스크 물량을 확보하는 3월 2일 이후 판매 예정이라는 공지와 그나마도 대구· 청도지역과 공급 여건이 취약한 읍·면 지역에서만 현장 판매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급해진 A 씨는 창구에 들어가 직원에게 마스크 판매 여부를 문의했으나 3월 이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 정확한 판매 시기나 판매처에 관한 정보는 듣지 못했다.

A 씨는 결국 우체국 옆에 있는 약국으로 갔지만, 약국에서도 성인용 마스크는 모두 팔려나간 상태로 아동용 마스크 5장을 어렵게 구했다.

다른 지역의 사정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날 오전 경기 용인시 하나로마트 광교점을 찾은 시민들도 입구에 붙은 안내 문구를 보고 허무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B(35) 씨는 "정부가 물량을 확보하지도 않고 판매 소식부터 발표한 건 너무 무책임한 처사 같다"며 "왜 이런 식으로 국민들을 헛고생시키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수원에 있는 한 마트 관계자는 "아침부터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냐는 문의가 100건 넘게 이어졌지만, 물량을 구할 수 없으니 속수무책"이라며 "현재 마스크 발주를 하루 1천매씩 하고 있지만, 아직 한 개도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전과 광주, 경남 창원에서도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찾아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지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서울 광진구 우체국 직원은 "어제부터 마스크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며 "우리 우체국만 해도 오전에 20∼30명은 마스크를 찾다가 그냥 돌아갔다"고 전했다.

이 우체국은 입구에 안내문을 게시해도 직접 창구로 찾아와 문의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안내문 글씨를 더 키워 출입문에 붙이기도 했다.

우체국 안내를 받은 시민들은 한숨을 쉬며 발길을 돌렸지만, 일부는 분통을 터뜨렸다.

한 시민은 "정부에서는 어제부터 우체국에서 마스크 판다고 해놓고 왜 이곳에서는 팔지 않느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며칠째 쓰던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다는 시민 C씨는 "정부의 발표를 믿고 마스크를 사러 왔는데 배신당한 기분"이라며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서류로만 판단하는 탁상행정의 결과"라고 날을 세웠다.

세종시 금남면 농협 하나로마트 관계자는 "오늘부터 마스크를 판매하느냐는 전화가 많이 걸려오고 있다"며 "당초 방침이 바뀌어 내달 2일부터 판매한다고 고객분들께 안내해 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 혼란이 이어지자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직접 나서 마스크를 배부하기도 했다.

충북 제천시는 이날 오전 소셜미디어로 시민들에게 긴급 공지한 뒤 오후 1시 35분부터 시민회관 광장에서 1인당 3매씩 모두 5천매의 마스크를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소식을 듣고 시민들이 몰리면서 준비한 물량은 40분 만에 동이 났다.

강릉시도 마스크를 미처 구매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이날부터 각 주민센터에서 마스크를 긴급 보급하기 시작했으나 극심한 혼잡이 빚어졌다.

강릉시 교1동주민센터는 오전부터 시민 수백명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고 주변 도로는 마스크를 받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의 차량으로 가득 차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일부 시민은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이렇게 모이게 해서야 되겠냐, 통반장을 통해 마스크를 나눠주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으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정부도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브리핑을 열고 "마스크 수급 안정 관련해 여러 조치에도 아직 수급 불안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공적 판매처와 세부 협의가 아직 진행되는 곳이 있어서 공적 물량을 구축하는데 하루 이틀 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시민들의 양해를 구했다.

마스크 구매 대란은 공적 판매처는 아니지만,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알려진 대형마트 등으로도 이어졌다.

대전과 세종지역 코스트코와 이마트트레이더스는 수백명의 시민이 몰려오자 개점 전에 각각 준비된 수량(300박스, 100박스)만큼 번호표를 배부해 30분 만에 동났다.

한 시민은 "앞줄에 계신 분은 새벽 4시부터 나와서 기다렸다고 하는데 이러다 텐트라도 치고 밤새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씁쓸해했다. (박주영 양영석 김상현 권준우 나보배 한지은 정성조 천정인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