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한인촌 르포] "한국인은 위험" 자기 집인데도 '문전박대'

활기 찾아가는 상하이서 한인타운엔 적막감…한식당 줄줄이 영업중지
우한 사람 처럼 취급받은 한국인들…"두 번 얻어맞은 기분" 한탄도
한국 주재원 가족인 A씨는 자녀를 데리고 최근 잠시 귀국했다가 지난 25일 밤 집이 있는 중국 상하이로 돌아왔다가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구베이(古北) 지역에 있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경비원들에게 진입을 거부당해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한국에서 돌아왔다는 이유로 14일이 지나야 자기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한국 총영사관이 즉각 개입해 당국과 교섭에 나선 끝에야 이 교민은 자기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아파트의 중국 주민들이 한국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를 퍼트릴까 봐 무섭다면서 관리사무소에 단체 민원을 넣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기 집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사례는 비단 A씨만의 일이 아니다.

교민 사회에 따르면 저장성 이우(義烏), 장쑤성 쑤저우(蘇州) 등지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정부가 구체적으로 이런 과도한 지침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중국인들 사이에 한국인에 대한 공포 심리 '코리안 포비아'가 싹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내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이곳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한국 국민들이 코로나19 발원지인 우한 사람이나 후베이성 사람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26일 밤 상하이 훙취안루(虹泉路) 일대에 형성된 한인타운에는 오가는 행인이 거의 없어 적막감이 가득했다. 신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일주일간 총 2명일 정도로 크게 줄면서 지난 주말부터 상하이 곳곳의 식당과 각종 상업 시설들이 대거 문을 열고 급속도로 거리가 활력을 되찾고 있지만 한인타운 일대는 전혀 다른 도시와 같은 풍경이었다.

한국 내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이곳을 찾는 중국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게다가 현지 중국 당국은 각종 행정 조치를 동원해 한인타운의 영업 정상화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한인촌을 대표하는 쇼핑센터인 징팅다샤(井亭大夏)는 한 개 입구만 열어 놓고 있었다.

문 앞에 관리인들이 나와 한국인들의 여권을 일일이 열어 최근 출입국 기록을 확인하고야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곳에는 주로 한인들이 운영하는 170여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가게가 있다.

그러나 현재 문을 연 곳은 슈퍼마켓, 정육점, 컴퓨터 업체 등 단 다섯 곳에 불과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춘제 연휴 전인 1월 문을 닫고 한 달 넘게 영업을 다시 못하고 있는데 영업 재개 신청 서류를 벌써 세 번이나 접수했다"며 "이번에는 진짜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계속 버텨갈 수 있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고 토로했다.

겨우 영업 허가를 받은 이들도 앞날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 징팅다샤 1층에서 대형 주방용품 가게를 운영하는 황모씨는 오는 손님이 전의 100분의 1 정도로 급감했다고 했다.

그는 "중국 내 코로나19가 터져 한 방 얻어맞았다가 최근 중국 사정이 좀 나아져 겨우 일어나는가 했는데 고국 상황이 나빠지면서 또 한 번 얻어맞은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현지 지방 정부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많은 한인 타운 일대를 '특별 관리' 중이다.

상하이가 중국의 주요 대도시 가운데 신규 코로나19 확산세를 가장 성공적으로 꺾었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자칫 사태가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정부는 엄격한 위생 검사를 거쳐 일부 한국 식당의 영업 재개를 허가했지만 최근 며칠 사이 다시 거의 모든 한인 식당의 일반 영업을 전면 중단시켰다.

현재는 한인 식당 중 일부 허가받은 업소만 배달 영업만 할 수 있다.

한국 식당 수십곳이 몰려 '먹자골목'을 형성한 한인타운 구역에는 아예 '통행 금지선'이 쳐졌다.

기자가 다가서자 경비실에서 경비원이 나와 나가라고 팔을 크게 휘저으면서 "여기 영업을 안 하고 배달만 하니 돌아가라"고 멀찌감치서 외쳤다.
그러나 한인타운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인 대형 복합 쇼핑센터는 밤까지 불을 켠 채로 식당가를 포함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지척 거리인데도 마치 다른 세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한인타운 일대를 관장하는 훙차오(虹橋)진 정부는 최근 한국 교민 대표들을 만나 한국에서 돌아온 우리 국민들이 14일간의 자율적인 자가격리를 반드시 따라 달라고도 요구했다.

훙차오진 관할 구역에만 약 2만8천명의 외국인이 거주 중이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인이다.

중국의 경제 중심 도시인 상하이는 수도 베이징과 더불어 우리나라 교민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다.

사실, 상하이의 자율격리 권고는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매우 부드러운 조치다.

웨이하이(威海) 같은 도시는 한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에 탄 사람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지정 격리시설로 옮기고 있고, 선양(瀋陽) 등 동북3성의 여러 도시는 한국서 도착한 외국인을 중간에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전용 차량으로 자가격리 장소까지 이동시키기도 한다.

도시별로 각각 한국인 격리 조치를 시행하다 보니 한국인이 업무 등 사정으로 부득이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 기존의 자가격리와 별도로 또 격리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일부 도시는 2주가 아닌 3주까지 격리를 요구한다.

중국 전역의 우리 교민들이 워낙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수준의 격리 조치를 동시다발적으로 당하고 있다 보니 우리 외교 당국도 상황 파악과 대처에 큰 애를 먹고 있다.

중국 지역 공관에 나와 있는 한 영사직 외교관은 "중국 정부가 추상적인 수준의 지침을 내리고 나면 말단 행정구역이나 거주 지역은 각자 사정에 맞는 조처를 내놓게 된다"며 "우리 교민들이 현지의 통제 방침을 우선 따를 필요가 있지만 객관적으로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개입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의 코로나19 방역 관련 통제 조치 강화가 한국 국민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중국 지방 당국이 일본인 등 다른 외국인에게도 강화된 관리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같은 조치가 실제로는 중국을 제외하고 코로나19 확산이 가장 심각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기자가 사는 상하이 아파트에서도 전날 밤부터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주민 관리가 갑자기 강화됐다.

아파트 단지 입구의 경비원은 한국인과 일본인 주민은 앞으로 들어올 때마다 이름, 전화번호, 최근 귀국 여부 등을 적어내야 한다면서 "여러분과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당국의 통제는 기본적으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로 이해하지만 일부 중국인들의 노골적인 냉대는 중국에서 지내는 우리 국민들에게 서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상하이의 한 아파트에 사는 교민 B씨는 며칠 전 단지 주민 모임에 '호출'을 당해 중국인 이웃들에게 마스크를 똑바로 쓰라는 등 일장 '훈계'를 들었다.

B씨는 같은 단지의 한국인 이웃들과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방에 이런 글을 썼다.

"(모인 중국 사람들이) 한국인 성토를 하는데 내가 왜 거기 와서 벌을 서야 하는지 황당해하면서도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는 외국이고 저희는 주인이 아닙니다.

힘들고 기분이 상할 수 있지만 인내하면서 모범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