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싣고 정처없이 떠도는 유조선들…"사줄 곳이 없다"(종합)

"원유 저장고 부족으로 돈 주고 팔게 될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석유 수요가 극감한 가운데 산유국의 감산 합의붕괴 이후 점유율 확대 경쟁에 나선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증산으로 원유 공급이 본격적인 과잉 양상을 빚고 있다. 저장고가 부족해지자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들이 바다 위를 정처 없이 떠도는 지경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조선들이 원유를 가득 싣고 출발하지만 정작 사겠다는 곳이 없어 해상을 떠도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의 한 정부 관리는 "구매자가 없어 유조선들이 도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사우디 항구에서) 원유를 싣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러시아와 감산 합의에 실패한 사우디는 이달부터 산유량을 하루 980만 배럴에서 1천230만 배럴로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수요가 급감한 상태에서 공급이 늘어나자 저장 공간마저 빠듯한 상황에 놓였다.

컨설팅업체 리스타드 에너지는 사우디의 증산으로 이달 국제 원유시장에서 초과 생산되는 원유량은 하루 평균 2천5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 전문 연구기관 JBC에너지는 "이달 하루 평균 600만 배럴의 원유가 말 그대로 갈 곳이 없는 '떠돌이 원유'가 될 것이고 5월에는 그 양이 하루 평균 700만 배럴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결국 원유 생산업자들이 돈을 주면서 원유를 가져가 달라고 요청해야 할 상황이 확산될 수 있다.

실제로 마이너스 유가는 이미 현실화했다. 지난달 중순 아스팔트 제조용 고밀도 유종인 '와이오밍 아스팔트 사우어'는 배럴당 마이너스(-) 19센트로 가격이 제시됐다.

골드만삭스는 "유전 폐쇄 비용을 고려하면 생산자들은 원유를 처리해주는 이에게 돈을 지불하려고 할 것"이라며 "땅 위에 있는 원유는 마이너스 가격이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CNBC 방송은 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날 보고서에서 "매일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원유 중 500만 배럴가량은 생산 비용도 상쇄하지 못하는 수준의 가격이 매겨질 것"이라며 "유가 붕괴는 다른 에너지 부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이미 올해 자금 지출 계획 축소에 나섰다.

사우디 국영 석유사 아람코와 다국적 기업 로열더치셸은 애초 지출 계획에서 20%를 줄이기로 했고 영국 BP도 올해 지출 계획을 25% 삭감하기로 했다.

국제 유가는 올해 들어 60% 이상 하락해 2002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와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21.02달러와 25.57달러 선에서 각각 거래되고 있다.

한편 산유국들의 초과 생산을 막으려면 국제 유가 하락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모건스탠리의 마틴 래츠 글로벌 원유 전략가는 블룸버그 TV 인터뷰에서 "시장 균형을 맞추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물리적 공급을 줄일 정도의 낮은 수준으로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유가는 배럴당 10달러 밑으로 떨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