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선천 질병 업무상 재해 인정 판결…엄마는 눈물만 흘렸다

"병원 측 탄압으로 고통스런 소송 과정, 당사자 아니면 몰라"
심장 질환 아기 출산한 제주의료원 간호사 10년 만에 승소

같은 병원에서 근무한 간호사들이 잇따라 선천성 심장 질환 아기를 출산한 데 대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29일 소송의 당사자 A(39·여)씨는 눈물을 쏟아냈다.
10년 전 제주의료원에서 A씨와 함께 근무했던 선배 간호사 B씨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A씨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다며 간접적으로 심정을 전했다.

B씨는 대법원 판결 소식을 들자 A씨는 고통스러웠던 소송 과정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A씨를 비롯한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은 2009년 임신해 유산 징후 등을 겪은 뒤 이듬해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 4명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당시 이들을 포함해 제주의료원에 근무하던 임산부 간호사 15명 중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기를 낳고, 5명은 유산을 했다.

건강한 아기를 출산한 간호사는 6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임신 초기 유해한 요소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에 질병이 생겼다며 요양급여를 청구했지만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B씨는 "노조 활동 당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낼 때 병원 측의 탄압으로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다"며 "당사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은 물론 병원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려 해사행위를 한 것처럼 몰아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노조는 무력화됐고, 간호사들은 위축됐다.
소송을 낸 4명의 간호사 중 3명은 현재까지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A씨는 아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결국 병원을 그만둬야 했다.선배인 B씨는 "A가 얼마나 힘든 싸움을 했는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것"이라며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고 눈물을 흘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이날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A씨 등 4명이 "요양급여 신청을 반려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와 그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하고, 국가 역시 이러한 위해 요소로부터 여성 근로자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이뤄지도록 할 책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지부(이하 의료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10년이란 세월의 기다림을 지나 드디어 대법원에서 태아의 선천적 장애가 산업재해로 인정됐다"고 말했다.의료연대는 "이번 판결은 단지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예방의 차원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안전한 일터에서 모성권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큰 발판이 될 것"이라며 "병원 노동자가 안전해야 환자들이 충분한 치료를 받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