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1분기 성적표 '예상밖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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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곳 중 2곳 증권사 추정치 웃돌아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폭락하던 지난 3월 중순.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증권회사들은 연일 과거 위기와 비교하는 보고서를 내고, 실적 전망치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들이 내놓은 1분기 성적표는 ‘예상 밖 선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LG생활건강 두산인프라코어 등 업종 대표기업이 줄줄이 증권사 기대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일까지 1분기 실적을 잠정 발표한 기업 세 곳 가운데 두 곳은 증권사 컨센서스(추정치 평균)보다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실적을 발표한 상장사 중 증권사 세 곳 이상에서 추정치를 낸 98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 중 66개 기업(67.3%)은 컨센서스보다 높은 영업이익(증권·금융회사는 순이익)을 기록했다. 컨센서스를 50% 이상 웃돈 기업도 12개(12.2%)나 됐다. 일찍 코로나19를 겪은 중국 소비 회복, 방역 성공에 따른 내수의 상대적 선방, 환율효과, 낮아진 시장 기대치 등이 얽힌 결과였다.
하지만 증권가는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유럽의 회복이 더뎌 2분기 한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수출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게 큰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中 소비 회복 덕보고…공장 재가동에 소비심리 개선
스마트폰 판매량 회복하며 LG이노텍 영업익 1379억
LG생활건강은 지난해 4분기까지 ‘실적이 사상 최고가 아니라야 뉴스가 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59분기 연속 영업이익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올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다들 “이번에는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LG생건은 또다시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다. 화장품의 부진을 생활용품 부문이 만회했다.LG생활건강뿐 아니다. 지금까지 1분기 실적을 공개한 국내 대기업들이 내놓은 성적표는 기대 이상이다. 지난 3월 19일 1457선까지 폭락했다가 최근 1950선에 육박한 주가지수를 기업들이 실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1분기 영업익 예상 밖 선전
상장사 가운데 증권사 컨센서스가 3개 이상 있는 98개 기업 중 66곳(67.3%)이 전망치보다 높은 이익을 거뒀다. 증권사들이 일찌감치 전망치를 낮춘 영향도 있지만 중국의 빠른 소비 회복, 고환율, 방역 성공, 경쟁력 등을 선전의 이유로 꼽을 수 있다.우선 중국. LG이노텍은 일찌감치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은 중국 경제가 회복된 효과를 본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1분기 컨센서스를 74.2% 웃도는 137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중국의 3월 스마트폰 판매량이 평년의 80% 수준으로 돌아왔고 애플이 상반기 신모델을 내놓은 게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두산인프라코어 오리온 등도 중국 덕을 봤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내 소비심리가 개선되고 있어 다수의 국내 기업이 혜택을 봤다”며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 받아야 하는 전자제품·자동차 업체 등은 조업이 예상보다 일찍 재개된 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환율·내수도 실적에 도움환율 효과도 있었다. 원·달러 환율은 3월 19일 달러당 1285원70전까지 치고 올라갔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6월 29일(1285원80전) 후 가장 높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환율 효과를 봤다. 삼성전자는 환율 덕에 1분기 매출이 3조원가량 늘었고, SK하이닉스는 환율 상승으로 전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700억원 증가했다. 현대미포조선 한국조선해양 등도 환율 효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현대자동차와 대우건설 등은 국내 수요 덕에 깜짝 실적을 냈다. 코로나19 사태로 망가질 줄 알았던 내수가 3월 들어 살아나며 실적 개선을 지원했다. 현대차는 올 1분기에 컨센서스 대비 20.9% 많은 863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현대차는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소형 세단을 과감히 정리하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늘렸으며 대형 세단도 국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국내 판매가 전년 동기보다 늘고, 단가도 높아진 게 실적의 지지대 역할을 했다.
대우건설은 1분기 주택부문 매출이 늘며 전년 동기보다 23% 증가한 120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증권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행·항공 등은 어려울 듯
이런 흐름을 반영해 증시는 최근 반등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달에만 11.0% 올랐다. 외국인의 매도세도 약해졌다. 외국인이 3월 삼성전자를 순매수한 날은 전체 22거래일 중 3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4월 들어서는 20거래일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거래일 동안 순매수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업종도 여럿 있다. 여행·면세점·항공 업종이 여기 속한다. 이들 가운데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종목은 호텔신라뿐이다. 호텔신라는 올 1분기에 컨센서스(69억원)를 크게 밑돈 66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유가 급락으로 에쓰오일은 1조원의 적자를 봤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주에도 실적 발표가 이어진다. 오는 7일에는 카카오와 BGF리테일이 1분기 실적 잠정치를 발표한다. 카카오는 비대면(언택트)주에 속하고 BGF리테일은 코로나19 사태의 타격이 비교적 덜한 편의점주다. CJ ENM(7일), NHN(8일), CJ제일제당(14일) 등도 단기적인 이익 악화 우려는 크지 않다.다만 화장품 비중이 큰 애경산업(7일)과 카지노주 파라다이스(12일) 등의 실적 추정치는 좋지 않다. 애경산업의 1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전년 동기 대비 35.4% 낮은 149억원이다. 파라다이스는 92.1% 줄어든 41억원이 예상된다.
양병훈/고윤상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