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과, '국정농단사건' 파기환송심 결과에 영향 미칠까(종합)

재판부, 준법감시위 실효성 따지겠다 언급…양형 반영 수순
집행유예 예단 어려워…'합병 의혹' 관련 조만간 검찰 소환 전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함에 따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과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과는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받기 위한 '노림수'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권고를 하고, 이를 받아들인 일련의 흐름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법정에서 요구한 내용과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당시 정준영 김세종 송영승 부장판사)는 지난해 10∼12월 공판에서 내부 준법감시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자 삼성 측은 올해 1월 준법감시위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열린 재판에서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는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의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며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해 실효성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감안한듯 준법감시위는 지난 3월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고, 이 부회장이 이를 받아들여 이날 실제 사과를 하는 데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으로서는 그룹 수장이 권고를 받아들일 만큼 '실효적인' 준법감시위가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한 셈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받은 이 부회장은 상고심에서 뇌물 인정액이 50억원 이상 늘어나 형량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사실상 유죄 판단은 뒤집을 수 없어 집행유예를 유지하는 것이 지상 과제인 상황에서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를 양형 사유로 삼을 수 있다고 먼저 언급한 것이다.

이를 두고 집행유예 판결을 하기 위한 사전 포석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재판부가 편향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기피 신청을 하기도 했다.

이 신청은 기각됐지만 특검이 재항고해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기피 신청을 기각한 서울고법 형사3부(배준현 표현덕 김규동 부장판사)의 결정 내용을 보면, 이런 논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재판부는 "뇌물과 횡령죄의 양형 기준에 '진지한 반성'이 양형 요소로 규정돼 있으니,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하는 등 다시는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 이를 여러 양형 사유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이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사과를 감형 요소로 인정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범죄 후 진지한 반성은 당연히 양형에 고려할 사유"라며 "반성의 빛이 없어서 엄벌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판결을 많이 하는데, 반대로 반성한다고 하면 반영을 하지 않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관건은 집행유예라는 결과가 나오느냐다.

이는 여러 양형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만큼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유죄로 인정된 뇌물과 횡령 혐의액이 이미 50억원 이상 늘어난 상황에서, 반성 등을 이유로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고 그 집행을 유예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시선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반적인 형사사건에서 '진지한 반성'이 얼마나 결정적인 양형 기준으로 작용해 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법원 내부에서도 애초에 재판부가 준법감시제도를 먼저 언급한 것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실형을 선고해도, 집행유예를 선고해도 부담이 큰 재판이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런 상황에서 예단을 드러낸다는 의심을 살 만한 발언을 한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2018년 11월부터 약 1년 6개월 동안 두 회사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파헤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삼성의 전·현직 고위 인사들을 연이어 소환해 합병 당시 그룹 내 의사결정 과정 등을 조사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사과문에서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아 왔다"며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들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힌 만큼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도 협조적인 태도로 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이달 내 합병 의혹 수사를 마무리하고 주요 피의자들의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의혹의 '핵심'인 이 부회장도 곧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