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대신 봉사자들이 달아준 카네이션…"그래도 사랑받는 기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구나 싶어 고마운 마음이지."
어버이날인 8일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 옆 불교계 비영리단체 사회복지원각 앞에서 만난 배모(81) 할아버지는 가슴에 꽂힌 카네이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미소를 지었다.

시각장애 2급이라는 배 할아버지는 "딸 둘, 아들 하나 자식들이 있지만 자기들 살기 바쁘니 본체만체다. 이해해야지 어쩌겠느냐"며 "정을 나눈다는 것도 옛날얘기"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러면서 "이렇게 봉사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사람도 있다는 걸 인식하고 산다"며 "봉사자들이 영원히 건강하길 마음으로 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원각은 매일 오전 10시30분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식사 대신 빵을 제공해 왔는데, 이날은 도시락과 카네이션, 수제비누, 양말, 마스크 등을 나눠드렸다.

자원봉사자들이 배식을 기다리는 어르신들께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리자 곳곳에서 "예쁘게 달아줘요", "감사합니다.

아이고 꽃도 다 달고∼"라는 목소리와 함께 웃음꽃이 피었다.
용모(78) 할아버지는 "함께 사는 아들이 아침에 카네이션을 달아줄 줄 알았는데 안 달아주더라"라며 "여기에서라도 꽃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온 송모(76) 할아버지는 "워낙 혼자 살아서 외로운 데는 훈련이 됐다"라면서도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없던 힘이 난다"고 말했다.

자녀에 대한 서운함을 내비치는 어르신도 있었다. 한 어르신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겠다는 자원봉사자에게 "자식들이 달아줘야지. 이렇게 달아 뭣하냐"며 손사래를 쳤다.

이모(81) 할아버지는 카네이션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면서도 "딸 다섯, 아들 둘이 있는데 외국에 가거나 멀리 살아서 식구라도 남이 됐다.

키워놨더니 다 없어졌다"라며 씁쓸해했다.

자원봉사자 서진우(49)씨는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때 '자제분 대신해서 하는 거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라'라고 말씀을 드렸다"며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준비된 도시락 320인분은 금세 동이 났다.

강소윤 사회복지원각 총무는 "400분 넘게 오신 것 같다"며 "뒤에 오신 분들에겐 도시락 대신 빵을 드려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사회복지원각을 이끄는 원경스님은 "예전에는 이웃이나 생면부지 어른도 아버님으로 호칭하며 대접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게 많이 사라진 것 같다"며 "시대는 변해도 따뜻한 마음은 한결같이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