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8차례 코로나 기자회견…비판 커질수록 '감성 호소'

외출 자제 등 부탁 문구 73차례 사용…책임 회피 전략?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전면 휴교를 요청한 지난 2월 29일부터 전국의 긴급사태 해제를 선언한 이달 25일까지 약 3개월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로 총 8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는데, 그것과 비례해 아베 총리가 사용한 말은 한층 감성적으로 흘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2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8차례 개최한 코로나19 대응 관련 기자회견의 발표문은 주로 관저(총리실) 경제담당 관료가 작성했다.

아베 총리의 연설 스타일은 TV 중계 화면에 잘 잡히지 않는 곳에 설치된 좌우의 프롬프터(원고영사기)에 나오는 발표문을 얼굴을 움직이면서 읽어 나가는 것이다.
가토 시게히로 홋카이도대 교수(언어학)는 아베 총리의 코로나19 관련 연설 내용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톤이 변했다고 지적했다.

가토 교수에 따르면 긴급사태 선포 전인 올 3월까지의 3차례 연설에선 "내가 결단을 내렸다"라거나 "지금까지 없었던 발상으로 과감하게 취한 조치다"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의 강한 리더십을 부각하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4월 이후로는 "혼란을 부른 것은 제 책임이다"라거나 " 단장(斷腸)의 심정"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는 등 고뇌를 내비치는 감성적인 표현이 늘어났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 종사자와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경영자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감사하고 격려하는 말도 많아졌다.

이 같은 연설 내용의 변화는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은 천 마스크의 전 국민 배포와 아베 총리 본인이 집에서 느긋하게 쉬는 모습의 동영상을 SNS에 올린 것을 놓고 비판이 쏟아지던 시기와 겹친다.

가토 교수는 비판 여론이 아베 총리의 연설 내용 변화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면서 감성적인 표현에는 "나도 열심히 하고 있고, 여러분과 같은 마음"이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반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국민 생활을 제한하는 외출자제 등을 요청하면서 총 73차례에 걸쳐 '부탁'(お願い)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사용한 점도 거론했다.

이는 정부가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나중에 일이 잘못됐을 경우 국민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어 아베 총리 입장에선 위험이 덜한 전략이었다고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은 관련 기사에서 아베 총리가 정치적 책임을 추궁당할 때마다 '(나에게) 책임이 있다'라거나 '책임을 다하겠다'라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질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치분석가인 이토 아쓰오 씨는 이 신문에 "정치인에게 말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아베 총리는 좌우 프롬프터를 볼 뿐이어서 말에서 본인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해외 사례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다른 나라와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라며 일본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해 긴급사태를 풀 수 있었던 것은 정부 대책의 효과라기보다는 국민적 대응이 낳은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