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전쟁을 제대로 내다본 예언가는 없었다"

전쟁학자 로렌스 프리드먼 '전쟁의 미래' 번역 출간

제1차 세계대전이 그토록 오래 끌면서 그토록 막대한 인명피해를 야기할 것이라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41년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해 한때나마 미국의 해군력을 불능상태로 몰아넣으리라는 것도, 2001년 알카에다가 비행기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워싱턴 미국 국방부 청사에 충돌하는 전대미문의 테러를 감행하리라는 것도 미리 내다본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쟁학과 군사전력의 권위자인 로렌스 프리드먼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명예교수는 '전쟁의 미래'(원제 The Future of War: A History·비즈니스북스)에서 지난 150년간 장차 벌어지게 될 전쟁의 양상을 제대로 예측한 경우가 거의 없었음에 주목한다.

수많은 군사전문가, 국제정치학자, 소설가들이 한결같이 오판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에 대비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겪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질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 군용 항공기, 탱크, 잠수함과 같은 신형 무기가 대거 등장하고 수비하는 측이 우위를 보이는 참호전의 특성에 따라 승패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전쟁이 장기화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전쟁 전 나온 수많은 군사 보고서나 신문 ·잡지 기사, 심지어 무한한 상상력이 허용되는 소설 가운데서도 이에 관한 예측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1891년 발간된 한 잡지 기사에서 "발칸반도에서 페르디난트 대공을 겨냥한 암살 시도로 전쟁이 촉발된다"는 예언이 눈에 띄지만 여기서는 대공이 불가리아인이고 암살 시도는 실패하는 것으로 돼 있어 신기하게 알아맞힌 '페르디난트'라는 이름 이외에는 모든 것이 실제 일어난 일과 달랐다.

1906년 영국 신문에 게재된 기사는 이 시대의 전형적인 전쟁 예측을 보여준다.

독일군 부대가 영국 런던을 포격해 엉망으로 만든 뒤 신속히 점령하고 영국은 어쩔 수 없이 강화협정에 동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예측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정적 전투'로 전쟁을 신속히 끝낼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고전적 전투이론에 얽매였기 때문이다.

고전적 형태의 전투는 동이 트자마자 시작해 날이 저물 때 끝나는 것이고 전장을 점유한 쪽이 승자가 된다.

진정으로 결정적인 승리는 적국 군대가 많은 사상자와 포로로 병력이 심하게 고갈돼 더는 실전을 치를 여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했다.

고전적 전투이론의 신봉자들은 그런 상황에서는 패전국이 협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가 군사적 실패를 목전에 두고도 패배의 비참한 결과를 떠안느니 차라리 계속 싸우기로 하는 양태가 이미 미국 남북전쟁(1861~65)에서 나타났음을 간과했다.

속전속결에 관한 과도한 낙관주의는 그 이후로도 내내 각국 전쟁 수뇌부를 미혹하며 결정적 오판을 낳게 했다.

히틀러의 전격전이나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전술적으로 성공했으나 소련의 반격과 미국의 참전을 불러오는 등 궁극적으로는 치명적인 패배의 빌미가 됐다.

저자는 이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결정적 이유로 첨단무기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꼽는다.
첨단무기와 신기술이 전쟁의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는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이것이 결정적 요인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진다.

미국은 압도적인 전력에도 베트남전에서 패했고 소총으로 무장한 아프가니스탄 반군에 지금도 고전하고 있다.

적국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내부의 정치 지형이 변하거나 적국의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는 등 전쟁의 국면을 좌우할 수많은 요인이 있고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으면 패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두 번의 세계 대전에 이은 냉전과 그것의 급작스러운 붕괴, 핵무기의 개발 및 강화, 9·11 테러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까지 전쟁의 양상 변화를 살펴본 뒤 미래의 전쟁에 관해 전망해본다.

앞으로 전쟁은 전면전으로 수행되기보다는 정규군과 비정규군이 혼재돼 있고 거짓 정보, 가짜뉴스, 해킹 등 사이버 테러리즘이 가미된 '하이브리드' 양상을 띨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과거 전쟁에 관한 예측이 거의 모두 잘못됐다는 점에서 저자도 미래의 전쟁을 예상하는 데 조심스럽다.

다만 문명화 과정을 거쳐 인류가 폭력에서 점차 벗어났다는 일각의 주장과 반대로 전쟁은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작은 폭력과 범죄는 언제든지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신기술로 많은 것이 이전과 다르게 펼쳐질지라도 전쟁이 벌어지면 여전히 수많은 희생을 낳을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조행복 옮김. 560쪽. 2만8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