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 치매신약…K바이오 "포기는 없다"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도
임상 3상 문턱 넘지 못해
치료제 아닌 '증상 완화제'만

일동제약·젬백스·아리바이오 등
"다른 기전으로 치료제 개발"
쓴맛 본 메디포스트도 재도전
제약사들의 치매 치료제 개발이 잇따라 실패하고 있다. 세계에서 5000여만 명의 환자가 치매로 고통받고 있지만 글로벌 제약사들마저 마땅한 치료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기존 치료제와 다른 기전을 가진 치료제로 임상에 진입하고 있다.

2024년 13조원 규모 시장에 치료제 無

메디포스트는 치매 치료제 개발 일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업체는 지난 7일 알츠하이머 치료 후보물질인 ‘뉴로스템’의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제대혈 유래 중간엽 줄기세포로 만든 이 후보물질은 인지 능력 개선 항목에서 유의미한 치료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메디포스트는 3년에 걸친 환자 장기 추적 결과를 보면서 치료제 개발에 재도전할 계획이다. 알츠하이머 치매 유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베타, 타우 등의 단백질이 일시적으로나마 줄어드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치매 치료제의 올해 세계 시장 규모는 3조원 수준이다. 2024년께는 1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제알츠하이머학회는 치매 환자 수가 2018년 5000여만 명에서 2030년 7470만 명으로 50%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허가된 치매 치료용 약물은 도네페질, 갈란타민 등 5개뿐이다. 이마저도 두세 달이 지나면 호전되던 증상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수준이다. 이들 약물이 ‘치료제’가 아니라 ‘증상 완화제’로 불리는 이유다.

치매 치료제 개발은 다국적 제약사들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로 꼽힌다.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일라이릴리, 바이오젠 등도 임상 3상 문턱을 넘지 못했다.기존에 개발되던 치매 치료제들은 뇌신경세포에 있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의 생성과 응집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런 방식의 치료제 개발이 잇따라 표류하면서 다른 기전으로 치료제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기선 메디프론디비티 대표는 “알츠하이머 발병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단백질인 타우 단백질의 응집을 억제하거나 뇌세포의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최근 추세”라고 설명했다.

치매 치료제 개발 나서는 K바이오

국내 업체들은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원인을 동시에 표적하는 방식으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천연물에서 유래한 치료 후보물질로 한국 임상 3상을 앞두고 있다. 치료 후보물질이 아밀로이드베타 생성 억제와 함께 뇌신경세포 보호 효과가 있는지를 검토할 계획이다.아밀로이드베타 생성 억제 외에 타우 단백질 생성 억제, 뇌신경세포 보호 등 여러 치매 발병 원인을 동시에 억제하는 다중 기전 방식으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도 있다. 아리바이오는 다중 기전 방식으로 미국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젬백스도 다중 기전 방식인 치료 후보물질로 국내에서 임상 2상을 마쳤다. 이 업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 2상 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약물 전달 효과를 높이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뇌혈관은 촘촘하게 구성된 혈뇌장벽(BBB)으로 둘러싸여 있다. 바이러스의 침입으로부터 뇌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기존 치료제들의 혈뇌장벽 투과율은 0.1% 수준이다. 이 때문에 뇌신경세포에 있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에 약물을 전달하기 위해선 투여량을 늘려야 하는 부작용이 있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혈뇌장벽에서 많이 발견되는 특정 수용체를 이용해 약물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투과율을 7%까지 끌어올린 ‘안티센스 올리고 뉴클레오티드(ASO)’ 기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뇌세포에서 발생한 염증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치매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해 1000개 이상 약물이 임상에 진입한 상황”이라며 “알츠하이머 발병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이 쏟아지고 있는 만큼 다국적 제약사들이 접근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국내에서 치료제를 개발해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