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조기총선 논란…'포스트 아베' 유력주자 이시바 반대

연내 조기 총선서 여당 압승 때 '아베 집권 연장론' 부상 전망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문제를 놓고 일본 집권당 내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의 조기 총선은 하원인 중의원 임기 만료 전에 국회(중의원)를 해산해 원(院) 구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중의원 해산권을 쥔 총리는 다수당(여당) 총재로서 의석을 늘릴 수 있는 유리한 시기를 골라 조기 총선 카드를 행사할 경우 취약해진 권력 기반을 재구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런 이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부실과 본인 및 측근의 잇따른 비리 스캔들로 2012년 12월 2차 집권을 시작한 이후 지지율이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내년 10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는 현 중의원을 중도 해산해 조기 총선을 치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 문제를 두고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내에서 이해득실에 따른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올 정기국회 폐회 후인 지난달 1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의원 해산 가능성에 대해 "(지금은) 머리의 한구석에도 (그럴 생각이) 없다"면서도 "국민 신뢰를 물어야 할 때가 오면 주저 없이 (해산을) 단행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과 관련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반복해온 것이지만 이번에는 '주저 없는 해산' 쪽에 무게가 실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달 중순 이후 여당 간부들과 식사를 겸해 만나는 자리를 잇따라 만들어 해산 시기 등에 관한 의견을 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 총선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다.

제2차 아베 정권의 핵심 멤버인 아소 부총리는 본인이 총리로 있던 2008년에 세계금융위기 대응에 집중하다가 해산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권력을 빼앗겼다는 이유를 들어 임시국회가 열리는 '올가을' 해산을 주장하고 있다. 아소 부총리는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지만 야당이 힘을 결집하지 못하고 있는 틈을 활용해 조기 총선을 하면 승산이 높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일 치러진 도쿄도 지사 선거에서 야권이 통합 후보를 내지 못하고 분열하는 양상을 보여 연립여당이 사실상 지원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현 지사가 압승하는 결과가 나왔다.

현재 일본이 당면한 여러 과제도 올가을 조기 총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우선 재확산 양상을 보이는 코로나19가 올가을 이후 본격적인 2차 확산기(2파)로 접어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 우려가 현실화하면 경제 사정은 한층 나빠지는 것이 불가피하고, 내년 7월로 연기한 도쿄올림픽의 취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올가을 이후 아베 정권을 부양할 호재가 별로 없으니 야당이 힘을 모을 시간을 주지 말고 해산을 서둘러 선거를 치르는 것이 여당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아소 부총리와 가까운 자민당의 한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시기를 놓쳐) 떠밀려 하는 해산을 피하려면 연내에 하는 길밖에 없다"며 "지금이라면 여당이 과반 의석 밑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뒤를 이을 유력한 주자로 떠오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은 지난 2일 강연에서 "국민에게 물어볼 쟁점이 없는 해산은 헌법의 취지에 크게 어긋난다"며 조기 해산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 조기 중의원 해산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번에는 과거와 다르게 국민에게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할 만한 뚜렷한 이슈가 보이지 않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코로나19 관련 지원 정책이나 호우 피해자 구호 등에 정치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마당에 단순히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조기 총선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연립 여당인 공명당도 "지금의 정치는 코로나19 감염 방지와 경제의 양립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조기 해산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조기 해산에 부정적이라고 전해 연내 해산론을 놓고 여권 내에서 찬반이 대립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기 총선이 아베 총리의 집권 연장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주목을 받고 있다.

현 자민당 당규는 총재 임기를 3연임까지만 가능하도록 돼 있어 이를 고치지 않는 한 아베 총리는 내년 9월의 당 총재 임기 종료 시점에 맞춰 총리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

이와 관련, 닛케이는 1986년 7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가 중·참의원 동시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뒤 같은 해 10월 말로 다가온 총재 임기를 당규 개정을 통해 연장한 사례가 있다며 '포스트 아베' 후보들이 연내 중의원 해산이 아베 총리의 당 총재 4선의 길을 열어줄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닛케이는 아베 총리 주도로 치러질 조기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하면 본인 뜻과는 무관하게 주변에서 아베 총리의 4선론이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