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문명의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킬까

세계 석학 7인에게 듣는 인류 미래…안희경씨 신간 '오늘부터의 세계'

"과거로 돌아가는 문은 닫혔다. 오늘부터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그 결과에 의해 형성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이미 우리 안에 도래해 있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반년 넘도록 요동치고 있다. 진정 기미는 고사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세가 날로 커져가는 양상이다.

지구 종말의 징후인가? 이를 헤쳐나갈 돌파구는 어디에 있을까?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 씨는 인류 미래에 대한 전방위적 비평을 듣고 문명의 새로운 좌표를 묻기 위해 세계 석학들과 만났다.

미국의 제러미 리프킨과 마사 누스바움, 중국의 원톄쥔, 한국의 장하준, 영국의 케이트 피킷과 닉 보스트롬, 캐나다의 반다나 시바가 그들이다.

안씨는 어제까지와는 다를 오늘부터의 세계에 대한 갈급함으로 이들 석학에게 질문을 던졌다. 위기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고, 인류 앞에는 어떤 선택지가 놓여 있는가.

그 선택이 가져올 우선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인터뷰는 온라인 화상이나 전화, 왕복 서한으로 이뤄졌고, 이를 바탕삼아 신간 '오늘부터의 세계'가 출간됐다.

"우리는 지금 기후변화와 그것이 야기한 감염병이 창궐하는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두 번째 파고는 지금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
'엔트로피', '글로벌 그린 뉴딜' 등의 저서로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 위기의 주요 원인을 묻는 저자의 질문에 '기후변화'라는 한 마디로 대답했다.

물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 야생터를 침범하는 인간의 활동, 그로 인한 야생동물의 이동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문명이 초래한 위기다.

리프킨은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거품인 화석연료 좌초 자산 위기에 있다"며 산업 인프라를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는 경제 패러다임, 즉 그린 뉴딜을 강조했다.

"바이러스는 현대화에 대한 일종의 비평문이다.

질주하는 관성을 멈춰야 한다.

"
농업경제학자인 원톄쥔은 코로나19 위기가 식량 위기로 치달을 것이며, 2008년 금융 위기 때처럼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될 거라면서 이같이 경고한다.

위기의 핵심은 서로가 서로의 시장이 돼준 글로벌 체인이 끊어진 데서 발생한다는 것. 그는 향후 세계 경제 질서가 미국이 선도하는 북아메리카, 서유럽이 선도하는 유럽, 동북아가 선도하는 아시아 등 세 지역의 삼각형 구조로 통합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제는 성장의 질이다.

온 국민이 편안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경제의 목표라면 성장은 그 목표를 이룰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고 선을 긋는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성장률은 마이너스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장 교수는 성장을 하지 않아도 국민 생활의 질이 올라갈 수 있다면서 마이너스라는 숫자 자체에 집착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모든 위험 부담을 약자에게 지우는 단기 효율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것. 코로나19 위기는 복지제도가 잘 된 나라 사람들이 고통을 덜 받고 더 안전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장 교수는 재정 건전성에만 집착하는 관료들, 분배와 제도개혁에 대한 고민이 없는 정부, 그리고 현 한국 사회에 가장 뼈아픈, 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요크대학 역학과 케이트 피킷 교수는 "감염병이 팬데믹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먼저 사회 구성원들이 회복 탄력성을 갖추도록 사회 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에서 의료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나라인 미국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처참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건강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온 피킷 교수는 전체 의료비 지출에서 민간 의료 서비스나 민간 의료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국민의 건강 격차가 벌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런 민간 의료 체제는 불평등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바이러스는 평등하다"는 통념과 달리 실제 영국에서 빈곤한 지역의 코로나10로 인한 사망률이 빈곤 정도가 가장 낮은 지역의 수치보다 두 배나 높았다며 불평등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기저 질환임을 환기시킨다.

저자 안씨는 책의 들머리에서 "위기는 약한 고리를 강타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먼저 쓰러트린다"며 "미약하지만 조금이라도 막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에 지혜를 갖춘 이들의 혜안을 빌리고자 노력했다"고 집필 취지를 밝힌다.

다수의 지구인이 강제적 혹은 자발적 고립의 시간을 보내는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출발이 '생각하기'라고 여기기에 이들 7인의 석학과 함께했다는 것. 책에는 역사학자이자 명저 '사피엔스'의 필자인 유발 하라리가 보내온 전언도 실려 있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안씨는 우리 문명의 좌표를 조망키 위해 놈 촘스키, 재러드 다이아몬드, 장 지글러,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등 세계 지성들을 직접 만나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등 3부작 기획 인터뷰집을 근래에 펴낸 바 있다. 메디치. 232쪽. 1만6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