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마다 '육지 속 섬' 반복…이골난 주민들 "다리 좀 놔달라"

원주 점말마을 고립되자 관광객 250명 산길 타고 겨우 빠져나가
영월·화천도 툭 하면 고립에 아찔한 사고 빈번…"이러다 큰일 날라" 걱정
"관광객 200명은 험한 산길로 몸만 겨우 빠져나가고, 나이가 90세 되신 할머니에 팔이 부러진 아이, 심장이 안 좋은 사람 등은 119 불러서 부축하고 업어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
큰비가 내릴 때마다 고립이 반복돼 '육지 속 섬'이나 마찬가지인 강원지역 작은마을이 올해도 어김없이 집중호우에 발이 꽁꽁 묶였다.

비만 내리면 고립으로 이어지는 일이 공식처럼 되풀이되고 있으나 뾰족한 대책 없이 하늘만 쳐다보는 상황에 주민들은 불편을 넘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점말마을은 최근 내린 비로 섬강 물이 불어 마을로 이어지는 진입로가 물에 잠겼다. 폭우는 마을주민 12가구 22명의 발뿐만이 아니라 주말을 맞아 달콤한 휴식을 즐기려던 관광객 250여 명의 발까지 묶어버렸다.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못한 관광객 200여 명은 지난 2일 산을 넘어 마을을 빠져나갔다.

울퉁불퉁하고 험한 산악길을 40여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나마도 몸이 성치 못한 노약자와 팔을 다친 아이 등 환자들은 이튿날 마을주민 또는 119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비알(비탈의 방언)이 상당히 심하고, 계곡에서는 물이 쏟아져 내려와서 흙바닥이 말도 못 해요.

먹을 거를 2∼3일 치를 사 왔는데 두고 가는 것 말고 방법이 있나요. 몸만 겨우 빠져나가는 거지. 두고 간 무거운 짐은 나중에 택배로 부쳐줘야 할 판이에요.

"
간현3리 4반 반장인 주경찬(61)씨가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며 쏟아낸 이야기들은 불어난 강물만큼이나 차고 넘쳤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만든 제방 형태의 임시다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전 차를 빼낸 일, 그 과정에서 차가 물에 떠내려갈 뻔했던 아찔했던 순간, 봇짐 싸듯 챙길 수 있는 모든 짐을 챙겨 탈출길에 올라야 했던 관광객들의 사정 등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점말마을은 소금산 출렁다리가 있는 간현관광지와 불과 1㎞ 떨어져 있어 주말이면 숙박을 위해 평균 200∼300명이 찾는 데도 변변한 교량 하나 없이 임시다리에 의지한다.

주민들은 툭하면 고립되는 상황에 이골이 나 있었다.

이곳은 2018년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로 지정됐으나 아직 교량가설과 주민이주를 놓고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강물에 휩쓸릴뻔한 아찔한 순간을 몇차례나 목격했다는 주씨는 "사람만 다니는 다리라도 놓아주든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며 원주시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처럼 폭우 때마다 섬마을이 되는 곳은 점말마을뿐만이 아니다.

영월군 남면 북쌍3리 문개실마을 역시 잠수교가 강물에 잠기면서 24가구 40명이 고립됐다.

최병도(57) 이장은 "다리 잠기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라며 "이번 폭우에 마을 주민들이 새벽 3시에 야영객들을 급히 깨워 구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에는 무려 45일간 고립된 일과 수년 전에는 전봇대가 쓰러져 전기가 끊어지고 식수도 끊겨 그야말로 생지옥을 경험했던 일을 떠올리며 "새 다리를 놓아달라고 군청에 건의했으나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 이장은 "119대원들도 쉽게 들어올 수 없어 몸이 아픈 어르신들이 병원에 갈 수 없고, 애써 키운 옥수수 등 작물이 출하 시기를 놓쳐 상품 가치가 떨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같은 사정으로 고립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윤기성(50) 화천군 상서면 봉오1리 이장은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관계 기관에 다리를 놓아달라고 건의할 때마다 이용 가구가 적어 놓아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답답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