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업고 나왔어요"…폭우 속 거동 불편 동네 어르신 구조

남원 거주 윤치원씨, 허리까지 차오른 빗물 뚫고 80대 노인 등 구해
"이 물난리가 나는데, 옆집 할머니한테 당연히 가봐야죠."
섬진강 둑이 무너질 만큼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일. 전북 남원시 금지면 원마을 어르신들의 대피를 도운 윤치원(53)씨는 당시 상황을 덤덤하게 털어놨다. 윤 씨는 8일 새벽 4시께, 비가 거세게 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는 서울에서 천막을 대여하는 사업을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행사가 줄면서 사흘 전부터 노모가 사는 남원에 잠깐 내려와 있었다.

집 주변을 살피려 밖으로 나가보니 하수도에서 빗물이 역류하며 윤 씨 허리께까지 물이 차 있었다. 순간 옆집에 사는 80대 할머니가 걱정된 윤 씨는 당장 옆집으로 달려가 할머니를 불렀다.

귀가 어두웠던 탓인지 할머니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얼른 방으로 달려가 할머니를 깨워 등에 업었다.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걷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지만, 윤 씨는 할머니의 옷이 젖지 않도록 최대한 상체를 낮추며 지대가 높은 곳까지 걸어 대피시켰다.

곧이어 소방대원 등이 마을을 돌며 주민들의 대피를 돕기 시작했다.

윤 씨도 이웃과 함께 아직 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더 있는지 살폈다. 막 대피소로 향하려고 할 때쯤, 반대편 골목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는 70대 노부부가 윤 씨 눈에 들어왔다.

노부부는 거동이 불편해 침수된 골목길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윤 씨와 이웃은 당장 그들에게 가 한 명씩 등에 업고 대피소로 이동했다.

윤 씨는 "나고 자란 곳이 남원이라 마을 어른들 모두 잘 알고 있다"며 "그분들을 '도와야겠다' 이런 대단한 생각보다 그저 몸이 불편하시니 혹시 화를 입지 않을까 걱정돼 무작정 찾아가 등에 업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윤 씨의 맞은편 주택에 사는 A씨는 "윤 씨가 젊고 힘도 좋아서 평소에도 궂은일을 많이 한다"며 "이번에 물난리가 났을 때도 주민들 대피며 복구도 함께 도와주며 정말 고생 많이 했다"며 연신 칭찬했다.

그날 오후,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금지면 일대는 지붕이 완전히 잠길 만큼 침수됐지만, 주민 모두가 미리 대피한 덕분에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
남원시 금지면 일대는 현재 수해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이 찾아와 오염된 가재도구 정리와 빨래, 논밭과 축사 정리 등을 돕고 있다. 윤 씨는 "나보다는 자원봉사자분들이 훨씬 고생이 많은 것 같다"며 "얼른 복구돼 마을이 일상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