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대신 매개하는 평론…한 가지로 해석되는 작품은 앙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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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문화평론가,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출간…"뛰어난 신진작가 대거 등장"
'대한민국에서 가장 콘텐츠를 사랑하는 사람'(이우정 작가)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드라마를 해석하는 사람'(박지은 작가) '드라마의 숨은 의도와 이면의 깊이를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내 주는 거장 평론가'(강은경 작가)
스타 작가들이 보내는 찬사의 주인공은 바로 정덕현(51) 대중문화평론가다. 그는 이달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를 출간했다.
예능 PD들의 인터뷰집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이후 6년 만이다.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드라마 관련 글을 매일 쓰다 보니까 내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작가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들을 위한 책을 하나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평론가가 쓴 책이라고 하면 작품을 냉정한 시선으로 분석하는 책이 떠오르지만, 이 책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더 많이 담긴 에세이다.
"제 경험을 던져놨지만 보는 분들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것들을 떠올리며 드라마를 본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드라마라는 건 결국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공유지대' 같은 것이거든요.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엄마 얘기가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엄마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
책에는 드라마가 42편이나 나온다.
고전 명작 반열에 든 '선덕여왕'부터 최근 종영한 '스토브리그' '이태원 클라쓰'까지 다양하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같이 누구나 다 아는 명대사보단 의미가 숨어있는 대사를 찾으려고 했다.
"맥락 없이 글로 쭉 읽었을 땐 감흥이 없을 수 있는데 드라마 안에서 맥락을 지닌 이야기로 던져지면 시청자들이 그걸 자기만의 맥락으로 끌어오죠. 그러면 명대사가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대사가 명대사예요.
다만 어떤 대사는 가까운 몇 명만 건드리지만, 어떤 대사는 그 시대를 건드리죠.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공감함으로써 명대사가 탄생합니다.
"
그가 대중문화평론이라는 낯선 분야에 칼럼니스트로서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0년대 초. 그는 "친구의 요청을 받아 대중문화 비평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의 원래 꿈은 소설가였다.
결혼 후 '어쩔 수 없이' 소주회사 홍보팀으로 사회에 발을 디뎠지만 얼마 못 가 퇴사하게 됐고,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글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 중엔 사이버 가수 아담을 만든 아담소프트의 홍보실장이라는 독특한 이력도 있다.
정 평론가는 "그때 연예·캐릭터 비즈니스와 음반 산업을 경험한 게 나중에 글 쓸 때 도움이 많이 됐다"고 돌아봤다.
지금은 하루 5시간 TV를 보고 매일 원고 3개를 마감한다.
최근 넷플릭스와 유튜브까지 섭렵하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그는 "이렇게 콘텐츠가 많은데 일주일에 글 하나 쓰는 건 평론가로서 직무유기"라면서도 "온종일 영상을 보느라 눈이 아프다"며 웃었다.
"드라마 비평은 영화와 달리 흐름을 타야 해요.
영화는 공개되면 끝이니까 완결된 비평을 던지지만, 드라마는 완결까진 모르는 거잖아요.
1∼2회 나올 때와 3∼4회 나올 때가 달라요.
별로였는데 좋아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마치 러닝메이트처럼 작가가 작품을 향해 달리면 저도 보조를 맞춰가면서 흐름을 잡아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려고 노력하는 거죠."
책에서 그는 '평론'에 대해 생각이 변했다고 고백한다.
대중문화평론가 초창기에 썼던 글들은 날이 서 있었지만, 40대가 되면서 '과연 이 시대에 누군가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 정 평론가는 "평론가의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하나의 진리가 아니라 각각이 가진 의견들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평론가의 말은 많은 말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나서서 강조하고 반박하고 싸우는 것들이 큰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보단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쪽에 내 역할이 있지 않겠나 싶었죠. 그건 평론가와는 다른 역할일 수 있어요.
제작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어긋나면 내가 매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역할을 굉장히 고민했죠. 한번은 제가 쓴 글을 읽었다면서 어느 작가한테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본인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제 글을 읽고 나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해주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때 확신을 얻었죠. 역시 한 가지로 해석되는 작품은 앙상할 수밖에 없다고. 많은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게 좋은 작품이고, 작가도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그래서 내 일도 의미가 있겠구나 싶었죠."
정 평론가는 최근 한국 드라마들의 경향성에 대해 "'뉴웨이브'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새로운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며 김은희, 이신화, 조용, 김루리 작가 등을 거론했다.
"자기 색이 확실히 드러나는 작가들이 최근에 속속 등장하고 있어요.
한국식 가족드라마는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장르는 보편적이죠. 요즘 한국드라마는 장르 문법을 기본적으로 끌고 와서 '글로벌 스탠다드'로 가고 있어요.
다만 장르를 한국적인 멜로, 가족극과 섞어서 새로운 문법으로 내놓는 게 요즘 신진 작가들이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새로운 드라마, K-콘텐츠가 열리고 있고 이 작가들이 K-콘텐츠를 이끌 거라고 예상합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에서 가장 콘텐츠를 사랑하는 사람'(이우정 작가)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드라마를 해석하는 사람'(박지은 작가) '드라마의 숨은 의도와 이면의 깊이를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내 주는 거장 평론가'(강은경 작가)
스타 작가들이 보내는 찬사의 주인공은 바로 정덕현(51) 대중문화평론가다. 그는 이달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를 출간했다.
예능 PD들의 인터뷰집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이후 6년 만이다.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드라마 관련 글을 매일 쓰다 보니까 내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작가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들을 위한 책을 하나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평론가가 쓴 책이라고 하면 작품을 냉정한 시선으로 분석하는 책이 떠오르지만, 이 책은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더 많이 담긴 에세이다.
"제 경험을 던져놨지만 보는 분들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것들을 떠올리며 드라마를 본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드라마라는 건 결국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공유지대' 같은 것이거든요.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엄마 얘기가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엄마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
책에는 드라마가 42편이나 나온다.
고전 명작 반열에 든 '선덕여왕'부터 최근 종영한 '스토브리그' '이태원 클라쓰'까지 다양하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같이 누구나 다 아는 명대사보단 의미가 숨어있는 대사를 찾으려고 했다.
"맥락 없이 글로 쭉 읽었을 땐 감흥이 없을 수 있는데 드라마 안에서 맥락을 지닌 이야기로 던져지면 시청자들이 그걸 자기만의 맥락으로 끌어오죠. 그러면 명대사가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대사가 명대사예요.
다만 어떤 대사는 가까운 몇 명만 건드리지만, 어떤 대사는 그 시대를 건드리죠.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공감함으로써 명대사가 탄생합니다.
"
그가 대중문화평론이라는 낯선 분야에 칼럼니스트로서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0년대 초. 그는 "친구의 요청을 받아 대중문화 비평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의 원래 꿈은 소설가였다.
결혼 후 '어쩔 수 없이' 소주회사 홍보팀으로 사회에 발을 디뎠지만 얼마 못 가 퇴사하게 됐고,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글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 중엔 사이버 가수 아담을 만든 아담소프트의 홍보실장이라는 독특한 이력도 있다.
정 평론가는 "그때 연예·캐릭터 비즈니스와 음반 산업을 경험한 게 나중에 글 쓸 때 도움이 많이 됐다"고 돌아봤다.
지금은 하루 5시간 TV를 보고 매일 원고 3개를 마감한다.
최근 넷플릭스와 유튜브까지 섭렵하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그는 "이렇게 콘텐츠가 많은데 일주일에 글 하나 쓰는 건 평론가로서 직무유기"라면서도 "온종일 영상을 보느라 눈이 아프다"며 웃었다.
"드라마 비평은 영화와 달리 흐름을 타야 해요.
영화는 공개되면 끝이니까 완결된 비평을 던지지만, 드라마는 완결까진 모르는 거잖아요.
1∼2회 나올 때와 3∼4회 나올 때가 달라요.
별로였는데 좋아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마치 러닝메이트처럼 작가가 작품을 향해 달리면 저도 보조를 맞춰가면서 흐름을 잡아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려고 노력하는 거죠."
책에서 그는 '평론'에 대해 생각이 변했다고 고백한다.
대중문화평론가 초창기에 썼던 글들은 날이 서 있었지만, 40대가 되면서 '과연 이 시대에 누군가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 정 평론가는 "평론가의 시대는 끝났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하나의 진리가 아니라 각각이 가진 의견들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평론가의 말은 많은 말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나서서 강조하고 반박하고 싸우는 것들이 큰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보단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쪽에 내 역할이 있지 않겠나 싶었죠. 그건 평론가와는 다른 역할일 수 있어요.
제작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어긋나면 내가 매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역할을 굉장히 고민했죠. 한번은 제가 쓴 글을 읽었다면서 어느 작가한테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본인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제 글을 읽고 나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해주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때 확신을 얻었죠. 역시 한 가지로 해석되는 작품은 앙상할 수밖에 없다고. 많은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게 좋은 작품이고, 작가도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그래서 내 일도 의미가 있겠구나 싶었죠."
정 평론가는 최근 한국 드라마들의 경향성에 대해 "'뉴웨이브'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새로운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며 김은희, 이신화, 조용, 김루리 작가 등을 거론했다.
"자기 색이 확실히 드러나는 작가들이 최근에 속속 등장하고 있어요.
한국식 가족드라마는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장르는 보편적이죠. 요즘 한국드라마는 장르 문법을 기본적으로 끌고 와서 '글로벌 스탠다드'로 가고 있어요.
다만 장르를 한국적인 멜로, 가족극과 섞어서 새로운 문법으로 내놓는 게 요즘 신진 작가들이라고 생각해요.
완전히 새로운 드라마, K-콘텐츠가 열리고 있고 이 작가들이 K-콘텐츠를 이끌 거라고 예상합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