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유족 채용'은 노사자치 결과"…단체협약 존중한 대법원

"노사협약은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취업 어려운 현실 외면 지적도
대법원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자녀를 특별 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노사자치에 법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만큼 공정한 채용에 대한 청년층의 요구도 커지고 있는 현실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 "헌법 보장한 노사자치 결과물에 개입 최소화해야"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현대·기아차의 산재유족 특별채용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하면서 그 근거로 단체협약이 헌법이 보장한 '노사협약 자치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헌법이 단체교섭권의 행사를 보장하고 있고 노조가 이 교섭권으로 사측과 자발적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한만큼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단체협약은 노동조합법이 이행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도 들며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헌법이 보장한 권한으로 단협이 체결됐고 그 이행까지 법이 강제한만큼 단협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뿐만 아니라 소극적 개입이라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특별채용 조항이 민법 103조가 명시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다고 볼 수 있는지였다. 재판부는 민법을 근거로 특별채용 조항을 무효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단협 조항을 최대한 존중하는 취지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산재유족 특별채용으로 전체 채용의 공정성이 '현저히'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면 단협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결국 산재유족 특별 채용이 다른 구직자들과 다른 별도 정원으로 선발된다는 점, 특별채용 규모가 매우 적다는 점 등은 단협을 무효로 볼 수 없는 핵심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특별채용으로 채용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 "구직자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채용의 자유·기회가 다소 제한을 받더라도 단협 조항을 위법하다고 단정해선 안된다고 판단했다.

◇ 예전과 달라진 청년 실업난 외면한 것이라는 지적도
다만 이번 대법원 판결이 구조적으로 심화하는 청년 실업난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상도 필요하지만 경기침체와 고용 없는 성장 등 장단기 악재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을 무겁게 직시해야 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15∼29세) 실업률은 지난해 9.5%로 2008년(7.1%)에 비해 2.4%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0.4%에서 9.1%로 1.3%포인트 하락했다.
재판부는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1990년대부터 노사가 스스로 지켜왔다는 점에서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는 노조에 유리한 조항일수록 쉽게 바꾸기 어려운 단협의 경직성을 간과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20년 넘게 바뀌지 않은 단협 조항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심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기택·민유숙 대법관은 소수의견으로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일자리를 대물림해 구직희망자를 차별하는 합의로, 공정한 채용에 관한 정의 관념과 법질서에 위반돼 무효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