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박사 박재갑, 이번엔 '한글 글꼴' 만들어 전시회까지

'개원칙서에서 한글재민으로 특별전', 한글날 하루전 서울대병원 박물관서 개막

'암박사'로 유명한 국내 암 연구 권위자 박재갑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72)가 못 하는 건 과연 뭘까? 70대 고령이지만 그의 관심사는 여전히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고, 청년 못지않은 정력적 활동을 끊임없이 펼친다. 박 교수는 국립암센터 탄생을 주도했고, 직접 단체까지 만들고 금연 운동을 벌여 흡연에 대한 사회 인식과 문화를 바꿔놓았는가 하면, 한국종교발전포럼을 창설해 '종교 박사'까지 자임했다.

의학, 의료행정, 사회 운동, 종교, 인문학 등을 두루 섭렵하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리게 하는 팔방미인임을 입증한 그가 이번에는 또 다른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냈다.

한글학자, 서체 전문가 등과 함께 '한글 글꼴'을 직접 개발한 동시에 이 서체를 활용한 서예 작품을 직접 제작해 전시회까지 열기로 한 것이다. 박 교수는 6일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574돌 한글날 하루 전인 오는 8일 '함께 쓰고, 함께 그리다 -'개원칙서'에서 '한글재민'으로'를 주제로 특별전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간담회가 열린 의학박물관에서 다음 달 12일까지 한 달여간 진행한다.
새로운 한글 글꼴 이름은 '재민체'(在民體)'이다. 주권이 국민에 있다는 정신을 담은 서체다.

재민체는 작명 취지에 따라 한국저작권위원회 웹사이트 '공유마당'에 오픈소스로 기증해 모든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박 교수가 새 글꼴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서울대병원 시계탑 건물 로비에 걸린 '대한의원개원칙서' 속 한글 글꼴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국민대 김민 교수팀과 함께 이 칙서의 한글 필체에 기반한 현대적 감성의 폰트를 개발하고 이름을 재민체로 지었다.

국한문 혼용인 대한의원개원칙서(국가등록문화재 제449호)는 조선 왕조 마지막 군주인 순종이 서울대병원의 전신이 된 근대식 국립병원 '대한의원' 개원일에 내린 칙서다.

"서울대학교병원 시계탑 건물 현관 로비를 지날 때마다 순종 황제께서 1908년에 내리신 대한의원개원칙서의 필체가 매우 품위 있으면서도 단아하고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개원칙서의 총 31 자소(字素)에 기반을 둔 새로운 한글 서체를 만들어 사용하고 싶었죠."
박 교수는 이번 전시에 서예 작품 6점을 출품했다.

대한의원개원칙서를 국한문 혼용 그대로 임서한 작품, 칙서의 한문을 우리 말로 해석해 모두 한글로 풀고 재민체로 써 내려간 작품 등이다.
영조 시대 '역질 관련 윤음綸音'과 정조 시절의 '무오년 독감'을 재민체로 쓴 작품은 현시대 역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잘 극복하자는 마음에서 골랐다고 한다.

박 교수는 직접 그린 9점의 회화 작품도 전시한다.

이쯤 되면 정말로 다빈치를 닮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전통 초상 화법으로 그린 '자화상', 조선 궁중화 채색기법의 '영생', 옻칠화인 '남산 송학도' 등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어머님 은혜를 칭송하는 '어머니', 우리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바라는 '부강한 대한민국' 등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