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지 "변화 없는 그림은 생명력 없어…변모해야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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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랑 개인전 '1990년대 단색조 회화 - 서체를 끌어들이다' "당시 단색화 집단에서 그림에 문자를 넣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변화를 위해 서체를 끌어들였어요.
비난하는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고 얼마나 고독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네요.
"
1980년대까지 단색화 그룹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노작가 이정지(79)는 변화를 시도했던 1990년대 작업을 되돌아보며 감정이 북받쳐 울컥했다.
벌써 30년 전 일이지만 힘들었던 당시 기억,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 완성한 작업을 다시 보는 감회가 뒤섞인 눈물이었다.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14일 개막하는 이정지 개인전 '1990년대 단색조 회화 - 서체(書體)를 끌어들이다'는 제목처럼 단색화에 서체를 도입해 작품세계에 전환점을 맞은 1990년대 작업을 소개한다.
여성 작가로서는 드물게 단색화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이정지는 1990년대부터 안진경체와 추사체 등의 서체를 활용한 실험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뚜렷한 형상이 드러나지 않았던 1980년대 단색화 사조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시도였고, 이정지에게는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림에 문자를 배척하던 단색화 집단에서 나는 밉상이 됐다"라며 "그분들과의 갈등도 생겼지만, 내가 선택한 길로 갈 것인지를 두고 나 자신의 갈등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당시 고민과 갈등, 고독감이 심해 정신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신체적으로도 무리가 왔다"라며 "하지만 더 변모하지 못하고 머물면 내 작업은 끝이라고 생각해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화면에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고유무상생(故有無相生)',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고장난명(孤掌難鳴)' 등을 써넣었다. 가훈이나 어린 시절 집에 붙어 있던 추사 글씨 등에서 가져온 글귀지만, 작품에서 글자를 또렷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내용보다는 획과 획이 만나고 결합할 때 나타나는 조형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정지의 작품은 단색조이면서도 그만의 '밑 작업'으로 독특한 질감을 드러낸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겹겹이 발라 밑바탕을 만들 때 화면을 일률적으로 촘촘히 메꾸지 않고 불규칙하게 간격을 둬 그림이 숨 쉴 공간을 준다.
붓으로 획을 긋지 않고 긁어서 글자를 쓰는 방식도 독특하다.
작가는 수행과도 같은 지난한 밑 작업을 거치고 팔레트 나이프로 표면을 긁어 글자를 써넣는다.
작가는 "1970~80년대 맥을 이어가면서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하던 서예를 접목하게 됐다"라며 "변화가 없는 그림을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변모해야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시에서는 그 시절 완성한 작품 약 35점을 볼 수 있다.
폭이 4m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일필휘지로 한 번에 글자를 긁어내 완성한 화면은 이정지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당시는 비난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자부심을 느낀다.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독창성"이라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어 청력이 떨어졌다는 그는 "귀가 안 들린다고 그림을 못 그리냐"면서 "죽을 때까지 내 마음대로 재미있게 그릴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제 고통의 시기는 끝났고 즐겁게 작업합니다.
한동안 너무 고독해서 가슴을 쳤는데 이제 아니에요.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힘이 없으면 힘이 없는 데로 허우적거리면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릴 것입니다. "
전시는 11월 3일까지. /연합뉴스
비난하는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고 얼마나 고독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네요.
"
1980년대까지 단색화 그룹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노작가 이정지(79)는 변화를 시도했던 1990년대 작업을 되돌아보며 감정이 북받쳐 울컥했다.
벌써 30년 전 일이지만 힘들었던 당시 기억,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 완성한 작업을 다시 보는 감회가 뒤섞인 눈물이었다.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14일 개막하는 이정지 개인전 '1990년대 단색조 회화 - 서체(書體)를 끌어들이다'는 제목처럼 단색화에 서체를 도입해 작품세계에 전환점을 맞은 1990년대 작업을 소개한다.
여성 작가로서는 드물게 단색화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이정지는 1990년대부터 안진경체와 추사체 등의 서체를 활용한 실험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뚜렷한 형상이 드러나지 않았던 1980년대 단색화 사조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시도였고, 이정지에게는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림에 문자를 배척하던 단색화 집단에서 나는 밉상이 됐다"라며 "그분들과의 갈등도 생겼지만, 내가 선택한 길로 갈 것인지를 두고 나 자신의 갈등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당시 고민과 갈등, 고독감이 심해 정신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신체적으로도 무리가 왔다"라며 "하지만 더 변모하지 못하고 머물면 내 작업은 끝이라고 생각해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화면에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고유무상생(故有無相生)',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고장난명(孤掌難鳴)' 등을 써넣었다. 가훈이나 어린 시절 집에 붙어 있던 추사 글씨 등에서 가져온 글귀지만, 작품에서 글자를 또렷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내용보다는 획과 획이 만나고 결합할 때 나타나는 조형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정지의 작품은 단색조이면서도 그만의 '밑 작업'으로 독특한 질감을 드러낸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겹겹이 발라 밑바탕을 만들 때 화면을 일률적으로 촘촘히 메꾸지 않고 불규칙하게 간격을 둬 그림이 숨 쉴 공간을 준다.
붓으로 획을 긋지 않고 긁어서 글자를 쓰는 방식도 독특하다.
작가는 수행과도 같은 지난한 밑 작업을 거치고 팔레트 나이프로 표면을 긁어 글자를 써넣는다.
작가는 "1970~80년대 맥을 이어가면서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하던 서예를 접목하게 됐다"라며 "변화가 없는 그림을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변모해야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시에서는 그 시절 완성한 작품 약 35점을 볼 수 있다.
폭이 4m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일필휘지로 한 번에 글자를 긁어내 완성한 화면은 이정지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작가는 "당시는 비난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자부심을 느낀다.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독창성"이라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어 청력이 떨어졌다는 그는 "귀가 안 들린다고 그림을 못 그리냐"면서 "죽을 때까지 내 마음대로 재미있게 그릴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제 고통의 시기는 끝났고 즐겁게 작업합니다.
한동안 너무 고독해서 가슴을 쳤는데 이제 아니에요.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힘이 없으면 힘이 없는 데로 허우적거리면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릴 것입니다. "
전시는 11월 3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