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퇴근 후엔 '선생님'…29년차 공무원의 이중생활

제천시청 김창순 팀장 28년째 야학 봉사…교장직까지 1인2역
"가르치면서 제가 더 많이 배워…야학 존재 널리 알려졌으면"

"배움에 목마른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야학을 열어야죠"
충북 제천시청의 김창순(54) 자연재난팀장은 주위 사람들의 응원 속에 '이중생활'을 즐긴다.

낮에는 시청에서 열정적으로 재난 관련 업무를 본다.

지난 8월 이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을 때는 한 달가량의 밤샘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밤에는 돌연 '선생님'으로 변신해 분필을 잡는다.

그는 올해로 공직 입문 29년차의 베테랑 토목직 공무원이자 이 지역 유일의 야학인 정진야간학교의 교장 겸 수학교사이다.

지난 19일 시청에서 만난 김 팀장은 "배워서 남 주자는 말을 모토로 학생들을 가르쳐왔는데 사실 제가 더 배우는 것이 많다"고 겸연쩍어했다.
그는 동료 공무원, 퇴직 교사, 일반 직장인 등 14명과 야학을 이끌고 있다.

정진야학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국사 등 중·고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과정을 무료로 운영한다.

수업은 남현동 주민자치센터 2층에서 하루 두 과목씩 평일 오후 6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이뤄진다. 올해 등록생은 20명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11명만 중·고교반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학생층이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으나, 지금은 40∼50대 이상의 '만학도'가 대부분이다.

정진야학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이웃에게 배움의 기쁨을 제공하기 위해 김능환씨 등 뜻있는 인사들에 의해 1986년 7월 만들어졌다.

작년까지 1천971명이 정진야학을 거쳐갔고, 이 중 838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김 팀장은 선배 공무원의 권유로 1992년 정진야학과 인연을 맺었다.

2년 정도 국어를 가르쳤지만, 시청 업무가 너무 바빠 한동안 예비교사로 이름만 올렸다.

그가 다시 야학 교단에 선 것은 2003년 5월부터이고, 과목도 수학으로 바꿨다.

2014년부터는 교장직까지 맡아 '1인2역'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에게 국어와 수학을 배운 제자는 줄잡아 1천200여명에 이른다.

김 팀장은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는 평생학습 정신과 가르치며 배우는 과정에서 함께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정신을 바탕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제천시와 교육청이 지원하는 야학 운영비는 대부분 난방비와 교재 구입비로 쓰인다.
수학여행이나 졸업식, 검정고시 응시행 버스 임차료와 식사비 등 쓸 돈이 필요하다 보니 그는 매월 3만원을 학교 운영비로 기부하고 있다.

공직 본업에도 충실해 그동안 제천시 모범공무원상, 충북도 우수공무원상, 내무부·농림식품부장관 표창, 정부 모범공무원상(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소외계층 돕기, 시상금 기부, 장학금 기부 등 지속해서 훈훈한 소식을 전했던 그는 지난해 청백봉사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김 팀장은 "인생 공부를 하는 것도 감사한데 졸업생들이 시청이나 학교를 찾아 와 '야학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거나 대학 합격소식을 들려줄 때, 스승의 날에 감사 인사를 들었을 때 정말 고마웠고,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야학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흘리는 감회의 눈물은 매번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학생 모집이 쉽지 않은데 제천에 야학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1명이라도 더 배움의 기회를 접했으면 좋겠다"며 "교사 모집도 마찬가지로, 배워서 남 주는 삶을 실천할 분들의 많은 지원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