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진빠지고 혼란스러웠던' 미국의 2020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20년을 정리하면서 독자 2천여 명에게 지난 한 해를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한 단어를 꼽아달라고 청했습니다.

답을 받아 취합해보니 독자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은 단어는 'Exhausting'과 'Lost', 'Chaotic'이었다고 합니다. 각각 '진이 빠지는', '길을 잃은', '혼란스러운'이라는 뜻입니다.

'Heartbreaking'(가슴이 찢어지는), 'Fallow'(이뤄진 것이 없는), 'Surreal'(비현실적인) 같은 답변도 이어졌다고 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걷잡을 수 없는 확산과 경제적 타격,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극단적 대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불복에 따른 초유의 혼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어들입니다. 2020년 한 해가 미국 국민에게 얼마나 무겁게 다가왔는지 단편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준 조사였습니다.

새해가 밝았지만 미국 국민에게는 우울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월 1일 2천만명을 넘어선 겁니다. 작년 12월 들어 매일 20만명 안팎으로 쏟아지며 무서운 확산세를 보이더니 결국 2천만명에 다다랐습니다.

작년 12월엔 일일 사망자가 3천명을 넘는 날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백신 접종 속도도 예상만큼 나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 연말까지 2천만명이 첫 번째 백신을 맞게 하겠다는 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12월 30일 오전 기준으로 약 259만명만 접종을 한 겁니다.

현재 접종이 이뤄지고 있는 미 제약회사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은 두 번씩 맞아야 합니다.

그래도 미국 국민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작년 12월 14∼20일 3천561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1년에 더 희망을 품는다는 응답자가 73%였습니다.

2021년이 더 겁난다는 응답자는 25%였습니다.

응답자 중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무려 91%가 2021년에 더 희망을 품는다고 했습니다.

오는 20일 취임식으로 막이 열리는 '조 바이든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임기를 이제 17일 남겨둔 트럼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어떤 '반란'을 모색할지 알 수 없지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 관측입니다.

바이든 당선인이 20일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하면 감개무량도 잠시, 곧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외정책을 비롯해 손보겠다고 공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코로나19 대응이 가장 시급합니다.

바이든 당선인은 최근 회견에서 아직 미국에 코로나19 최악이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바이든 시대를 열자마자 코로나19로 인한 최악의 시기를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취임 첫날부터 소매를 걷어붙이고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 나서야 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어느 때보다도 힘든 2020년을 보낸 미국 국민에게 2021년엔 희망을 선사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