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파도소리에 시름 '쏴아∼' 울진·영덕 차박·차크닉

거리두며 인적 드문 곳에서 갑갑함 달래

서로 모이지 않고 거리를 두어야 할 때다. 그러나 집안에서만 갇혀있다 보니 갑갑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잘 찾아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인적 드문 곳에서 갑갑함을 달랠 방법은 있다.

차에서 잠을 자면서 여행하는 차박이나 차를 활용한 피크닉인 '차크닉'도 그중 하나다. 경북 동해안은 긴 해안선을 따라 인적 드문 해수욕장이 즐비하다.
◇ 울진 은어다리 차박
답답함이 가득한 요즘. 새하얀 물거품이 부서지는 겨울 바다를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1980년대 말 청춘을 보낸 '응팔' 세대의 심금을 울렸던 가요 '겨울 바다'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동해안은 그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경북 울진의 인적이 드문 해변을 골랐다.

울진을 흐르는 남대천에는 은빛 은어 모양의 구조물이 양쪽에 있는 다리가 서 있다. 울진의 상징인 은어다리다.

이곳은 바닷가지만 예전부터 민물고기인 은어가 많이 잡히던 곳이었다.

1994년 소설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한 소설가 윤대녕이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은어 낚시를 다니던 곳이기도 하다.

울진은 25년 전에도 은어 낚시가 유명할 정도로 은어가 많은 고장이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울진까지 거리는 꽤 멀었다.
이것저것 장비를 빌리고 또 챙기다 보니 은어다리가 보이는 곳에 도착한 것은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풍경이 좋은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다 보니 벌써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동쪽은 해가 더 빨리 떨어진다.

붉게 물든 하늘 밑, 은어다리 인근 주차장에 차를 두고 차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중 인근 충주에서 왔다는 20대 김모 씨를 멀찍이서 만나 인사만 잠시 나눴다.

김씨에게도 바다와 은어다리가 보이는 이곳 공터는 최상의 차크닉 장소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가 자리 잡은 곳은 동해를 등지고 은어다리를 바라보면 왼쪽에 있는 간이 주차장이었다.

주차장에는 차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몰고 온 차량이 서너 대가량 주차돼 있었다.

주말엔 전망이 좋은 곳을 차지하려는 자리 경쟁이 있다.

때마침 해가 지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하다 은어다리 반대편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주차장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목의 공터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차량 뒷좌석을 평탄화했다.

텐트를 치는 등 별다른 세팅을 하지 않은 것은 이곳이 텐트를 치고 본격적인 캠핑을 할 만한 장소로 여겨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잠시 후 배가 고파왔다.

인근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자리에 누웠다.
이렇게 차량 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차박을 하는 것을 '스텔스 차박'이라고 한다.

스텔스 차박을 하는 경우는 최상의 전망을 놓칠 수 없는 곳에서 간단히 1박을 해야 할 때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전망 좋은 자리를 찾아 해변으로 차를 몰고 내려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모랫바닥에 차가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차박 세팅을 하는 도중 저 멀리 차 한 대가 빠져 애를 먹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밭에 빠진 차도 탈출하고, 사위가 고요해진 시간, 이젠 나만의 시간을 맞았다.

동해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깊은 잠이었다.

◇ 영덕 경정해변 차크닉
아침 일찍 눈을 떴다.

기왕 울진까지 내려온 김에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을 훑기로 했다.

국도를 벗어나 해안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기가 막힌 장소를 발견했다.

경북 영덕군 축산면의 경정해수욕장에 텐트 설치용 데크가 여럿 보였다.

때마침 아무도 없었기에 잠시나마 차크닉을 즐기기로 했다.

차크닉은 최근 차박과 함께 만들어진 신조어로,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간 뒤에 차에서 풍경 등을 즐긴 뒤 돌아오는 것을 뜻한다.

어쩌면 코로나19 시대에 알맞은 여가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번에는 먹거리를 대게로 정했다.

동해안의 겨울 별미니 빼놓을 수 없다.
겨울철을 맞아 게가 살이 올라올 시기인데다, 최근 해외 수출길이 막히면서 가격도 저렴해져 부담이 없다.

흔히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은 지역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지역 상권을 위해서, 또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라도 동해안을 찾을 때는 게 요리를 먹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산 게는 영덕산이 아니라 울진산이다.

울진 후포에서 산 게를 영덕 해변에 와서 먹는 것이다.

경계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일 뿐, 울진이든 영덕이든 어디서 잡혀도 같은 동해안 게가 아닌가.

울진 후포에는 자주 시켜 먹는 단골 게 전문점이 있다.

이곳에서는 바가지를 쓰지 않아서 좋다.

포장해 온 스티로폼 상자 뚜껑을 여니 김이 확 올라온다.

아직도 뜨끈뜨끈하다.

게 다리를 잘랐더니 속살이 꽉 찼다.

바로 앞의 등대는 저녁이 되니 불이 켜진다.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다 보니 어느새 해는 해변 반대쪽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다.

경정 해변은 동해임에도 불구하고 석양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해수욕장 가운데서도 국내 최상의 장소다.

풍경에 홀려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나니 저녁 시간이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등불이 하나둘 켜지면 마법과도 같은 겨울바다의 밤이 찾아온다.

동해안답지 않게 고요한 앞바다는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경정해수욕장은 등대와 어울린 바다 풍경이 아름다웠다.

아웃도어의 밤은 무엇보다 고요하고 특별하다.

차갑지만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상쾌한 밤공기 아래 스마트폰으로 은어낚시통신 주인공이 들었다던 빌리 홀리데이 음악을 찾았다.

고요하게 멀리서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해방감을 줬다.

◇ 차박에서 전기를 사용하다
동계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온이다.

보통 동계캠핑을 말할 때 필자는 침낭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곤 했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인산철 파워뱅크로 얼마나 뜨끈하게, 얼마 동안 전기매트를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이를 위해 100암페어(A)짜리 차박 전용 12볼트(V) 인산철 파워뱅크를 지인으로부터 빌렸다.

특별히 이번 차박을 위해 12V 전용 탄소 전기 매트도 한 장 구했다.

오후 5시부터 테스트 삼아 돌려봤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성공이었다.

뜨끈함이 바닥에서 올라와 마치 집안에서 잠자는 것처럼 따뜻했다.

2인용인 이 전기매트는 전원이 좌우로 분리돼 있다.

오후 5시부터 양쪽 모두 켠 뒤 최대 용량인 7단으로 높였더니 3시간 뒤인 오후 8시에는 20%가량이 소비됐다.

그 이후부터는 한쪽 전원을 끄고 3단으로 낮췄는데도 뜨끈뜨끈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전원이 꺼져 있었다.

고장인 줄 알고 전기매트 업체에 물어봤더니 8시간 동안 작동된 뒤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배터리는 60% 이상 남아있었다.

전원이 꺼졌지만 자면서 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것은 다운 침낭의 힘이다.

다운 침낭에서는 한번 축열된 온도가 웬만하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초보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침낭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다운 침낭을 사용하면 이처럼 전기가 끊어졌을 때도 큰 어려움 없이 숙박할 수 있다.

크게 고생한 뒤에야 제대로 된 침낭을 구하는 사람도 많다.

차박의 경우 최소 100A 이상의 제품이 되어야 하룻밤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다.

소비전력이 100와트(W)인 전기매트를 쓴다고 보면 대략 12시간가량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다.

이번 테스트 결과, 아껴서 운용한다면 2박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배터리의 경우 국내 생산 제품을 구하는 것이 안전하다.

중국산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사용하다 문제가 생기면 피해보상 등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차박용 전기매트의 경우 12V를 사용하는 탄소 매트가 주목받고 있다.

이 매트는 전자파 발생을 크게 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잠시 추위를 피하고자 차량 내부에서 가스난로 등을 켜면 절대 안 된다.

차량은 특히 기밀성이 좋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질식사할 수도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