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징역형 확정…"투자는 어찌하나" 고민 커진 삼성(종합2보)

내부서 총수 부재에 반도체 투자 등 경영차질 우려 목소리
상속·취업제한 문제도 해결해야…26일 준법감시위 최고경영자 첫 회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 25일 이 부회장측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모두 재상고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이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6개월 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이미 복역한 1년을 뺀 나머지 1년 6개월동안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 부회장이 앞으로 특별 사면이나 가석방 등을 통해 중간에 풀려나지 않는다면 삼성전자로선 내년 7월까지 총수 부재 상황이 이어지는 셈이다.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로 충격에 빠졌던 삼성은 정현호 사업지원TF 사장과 계열사 사장단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비상경영체제의 고삐를 죌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2017년 그룹 해체 이후 계열사별로 자율경영을 해온 만큼 일상적인 업무는 사장이 결정하고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되는 형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내부에서는 그러나 최장 1년 6개월간 이어질 총수 부재 기간에 경영 차질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현안들이 쌓여 있는데 제한된 보고와 정보만으로 이 부회장의 '옥중 경영'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당장 삼성전자는 30조원 이상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평택 P3라인에 대한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사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착공과 투자 규모가 공개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로 미뤄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 확대 여부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인텔이 일부 반도체에 대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외주를 검토중인 가운데 삼성도 14나노미터(nm) 설비 위주인 미국 오스틴 공장 증설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업계는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와 마찬가지로 자국산업 보호 및 일자리 창출 정책에 따라 미국 진출 기업에 대한 투자를 압박하면서 다양한 '인센티브'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삼성도 조만간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신들은 앞다퉈 삼성의 투자계획을 보도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삼성전자가 100억달러(약 11조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향후 3나노 칩까지 제조 가능한 공장을 오스틴에 설립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22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애리조나, 텍사스 또는 뉴욕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170억 달러의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삼성의 투자를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다.

파운드리 경쟁사인 대만의 TSMC가 올해 최대 30조원이 넘는 막대한 투자를 예고해 삼성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TSMC는 현재 12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5나노 공정의 파운드리 공장 신축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오스틴 공장 증설에 대비해 지난해 12월 공장 인근에 매입해둔 부지에 대한 용도변경을 마쳤다.

재계는 그러나 이 부회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제한된 보고만 받고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 결정을 적기에 내릴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한다.

삼성은 현재 "국내외 투자와 관련해선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이 부회장은 현재 회사 업무 외에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 정리와 상속세 재원 마련도 옥중에서 해결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이 부회장의 상속세 납부 기한은 오는 4월까지로 그사이에 주식과 부동산·미술품 등 상속 재산 평가와 유족간 재산과 주식 배분, 12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상속세 조달 방안을 확정해야 한다.

삼성 관계자는 "2017년에도 이 부회장이 옥중 경영을 했지만 구속 전 인수 결정을 내린 하만 인수 절차나 이미 투자계획이 있던 공장 증설 등 루틴한 의사결정만 가능했다"며 "새로운 대규모 투자나 M&A 등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의 의사결정은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글로벌 시장 상황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만큼 이 부회장이 재구속 되기 전 논의되던 투자 등에 대해서는 조만간 계획이 공개될 가능성도 크다.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와 관계없이 재판부가 지시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는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나간다.

이 부회장은 21일 준감위 정례회의를 앞두고 변호인을 통해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위원장과 위원들께는 앞으로도 계속 본연의 역할을 다해 달라"는 메세지를 전달했고, 준감위 역시 "결과로 실효성을 증명해 낼 것"이라고 지속 의지를 밝혔다.

준감위는 26일 7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참여하는 회의를 처음으로 개최한다.

준감위 관계자는 "최고경영자가 모이는 첫 날인 만큼 상견례를 겸하면서 앞으로 준감위 활동 계획과 정례화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형이 확정되면서 취업제한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가법)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은 형 집행이 종료된 후에도 5년간 삼성전자에 재직할 수 없게 돼 있다.

현재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는 "이 부회장의 판결이 확정되면, 법무부는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이 부회장의 해임을 즉각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기 출소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법무부가 '판결이 확정되면' 바로 이 부회장의 해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옥중 경영'조차 제약을 받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서 등기이사를 내려놓고 무보수로 근무해온 만큼 취업제한 규정과 무관하다는 의견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이 부회장이 사면복권이 되거나 법무부 장관의 승인으로 취업제한이 풀리지 않는 이상 취업제한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며 "이 문제 역시 삼성과 이 부회장이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