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 "우주영화 대본에 한글로 적힌 '승리호' 보고 소름"

온라인 인터뷰…"멋있고 샤프한 우주 조종사였다면 안 끌렸을 것"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한 손에 화투패를 들고 "이런 판은 죽을 수 없지"라는 대사를 날린다. 배우 송중기는 국내 첫 우주 SF(공상과학) 영화 '승리호'의 조종사 태호역을 맡았다.

우주선 조종사라면 의례 온갖 멋있는 폼을 다 잡을 것 같지만, 태호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짠내'를 폴폴 풍긴다.
9일 온라인 인터뷰로 만난 송중기는 넷플릭스에서 개봉된 영화 '승리호'에서 맡은 서민적인 캐릭터에 애정을 드러냈다. 송중기는 "굉장히 멋있고 샤프한(빈틈없는) 조종사였다면 끌리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역할은 낯간지러워한다"며 "승리호는 최첨단 우주선도 아니고 청소선이다.

얼굴에는 찌든 때가 묻어있고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태호는 속마음은 따뜻한데 겉으로 표현을 잘 못 한다.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인물로 접근했다"며 "기본적으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큰 사건을 겪어 정체됐던 인물이란 점을 짧은 몽타주 안에 담아내려고 했다. 진정성 있고, 책임감 있게 연기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승리호'는 지난 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영화 순위 1위에 오르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한국이 만든 첫 우주 영화로 2092년을 배경으로 우주 쓰레기를 수집해 돈을 버는 승리호 선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송중기는 "한국에서 우주 SF를 만든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CG(컴퓨터 그래픽)도 없고, 텍스트만 있었는데 우주 영화에 토속적으로 '승리호'라고 한글이 쓰여 있고,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며 "이걸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나도 관객으로서 보지 못했던 그림인데, 영화가 잘 나오면 관객들이 좋아하고 신선해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 영화 1위에 오른 승전보에 대해 "솔직히 너무 좋다.

"남미, 동남아에 있는 친구들도 이야기해주는데 '정말 많이 보고 계시는구나'라고 피부로 느낀다"며 "마블을 굉장히 사랑하는 지인으로부터 영화를 잘 만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뿌듯하더라. '허접한 SF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SF영화의 특성상 CG 작업을 위한 크로마키 촬영 기법 등이 낯설었을 법도 한데 송중기는 제작진의 충분한 준비와 뛰어난 기술력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기술적인 부분은 워낙 스텝들이 잘 준비해줬다.

한국 스텝의 준비성과 기술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한국 영화의 가능성은 봉준호 감독님이 너무나 큰 업적을 만들어 주셨는데, 갑자기 나온 성과는 아니고 쌓여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한다.

승리호도 스텝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송중기의 그동안의 작품활동을 보면 쉬운 선택이 없었다.

영화 '늑대소년'(2012)에서는 제목대로 늑대인간을 연기했고,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2019)에서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접해보지 못한 초대형 판타지 장르에 도전했다.

송중기는 "다들 처음 해보는 작품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 데 어려운 프로젝트라는 생각을 안 한다.

'크게 다를 게 있겠어'라고 생각하면서 한다"며 "했던 걸 또 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신선한 시도를 하려고 한다.

끌리는 작품을 과감하게 선택하는 점이 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승리호'의 경우 작품을 선택하는 데 조성희 감독에 대한 믿음도 컸다.

'늑대소년'으로 호흡을 맞춰본 조 감독과는 신뢰가 쌓인 관계고, 색이 잘 맞는다고 했다.

송중기는 "이른바 '조성희 월드'를 굉장히 좋아한다.

토속적이지만, 개성 있고, 모험적인 부분이 나와 비슷하다.

출연 이유의 8할 이상이 조성희 감독님인 것 같다"며 "누군가와 다시 만나는 일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다 보니 '승리호' 때가 '늑대소년' 때보다 소통도 많이 하게 되고 훨씬 재밌었다"고 전했다.

'승리호'가 영화관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며 아쉬워하는 관객들도 있지만, 송중기는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았다.

송중기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가장 큰 가치는 다양한 사람들과 이를 공유하는 것이다.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만 공개돼도 감지덕지한 일인데 전 세계에 공개되고, 1위도 했다고 하니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