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서 산업찾기] “인간 게놈 프로젝트 20주년” 신약 후보물질 개발된 논문 7000여 편에 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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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표지는 모두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차지했습니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발표된 지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생물학 연구의 폭을 크게 확장했습니다.인간을 구성하는 생물학적 기원인 DNA를 모두 밝혀내겠다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총 30억 달러(약 3조3255억 원)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중국을 중심으로 1990년 시작됐습니다. 무려 10여 년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2001년 최초로 인간 유전자 지도의 초안이 공개됐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생물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습니다.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약물 타깃 명확해져…신약 개발 부흥
30억 개의 염기쌍을 모두 읽어 유전자 지도를 만들자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1990년에 시작해 2003년에야 끝이 났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이 개발돼 있지 않던 상황이라, 수백 개의 염기를 분석하는 데에도 3~4일이 꼬박 걸렸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분석한 게놈은 여러 기념비적인 논문을 남겼습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20주년을 기념해 1990~2017년에 발표된 유전자 관련 논문 70만3515개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유전에 의한 질병을 다룬 논문이 1660개, 신약과 관련한 논문이 7712개에 달했습니다. 현재 보건당국의 판매 승인을 받았거나 임상시험 중인 약물을 다룬 것만 이 정도입니다. 그만큼 질병 치료와 신약 개발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큰 기여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생물학 연구에 크게 두 가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우선 신약 개발의 표적이 명확해졌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유전자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던 1980년대에는 우연히 약물을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많은 수의 ‘단백질 유전자’가 밝혀지면서, 정확하게 질병 단백질을 타깃하는 방식으로 신약 개발의 방향이 바뀌게 됐습니다.
<네이처>에 따르면 2001년까지 표적 단백질을 정확하게 알고 약물을 개발하는 경우는 절반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간 게놈 프로젝트 초안이 발표된 2001년 이후 매년 단백질 유전자를 언급하는 논문이 매년 1만~2만 개가 쏟아져 나왔고, 2000년대 중반에는 약 2만 개의 단백질 유전자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잠재적인 표적 단백질 2만 개 중 약 10%만이 약물로 개발됐습니다.쓰레기인 줄 알았던 비암호화 영역 유전자, 사실은 핵심 유전자였다또 하나의 변화는 ‘정크 DNA’에 대한 시각입니다. 정크 DNA는 단백질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비암호화 영역’의 유전자입니다.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정크(junk)’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과학자들 사이에는 정크 DNA(비암호화 영역)의 시퀀싱 여부를 두고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전체 유전자 중 정크 DNA가 차지하는 비율이 80~90% 정도인데, 아무 쓸모없는 이 유전자들을 다 읽어내는 데 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고등생물일수록 정크 DNA가 많다는 점을 들어 비암호화 영역까지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모든 유전자를 읽기로 결정했습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비암호화 유전자는 단백질 발현에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여러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자인자들의 활성에 비암호화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비암호화 RNA로는 ‘HOTAIR’이 있습니다. HOTAIR은 염색체 12번 자리에 위치하는 유전자로, 여러 유전자의 발현에 관여합니다. 이 유전자가 중요한 이유는 암의 발생과 큰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2011년 말기 유방암과 대장암에서 HOTAIR 유전자가 과도하게 발현돼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몰리큘러 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암세포에서 HOTAIR의 발현을 억제하자 암의 전이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현재까지 자궁암, 소화기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HOTAIR의 역할을 추적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후성유전학적인 메커니즘에 비암호화 RNA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여러 유전 질병과 관련한 비암호화 RNA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최근 바이오업계의 새로운 모달리티로 주목받고 있는 짧은 간섭 RNA(siRNA) 역시 비암호화 RNA 중 하나입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20년간 구축해온 생물학 연구들은 이제 유전자 간 네트워크 구조 형성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중요 유전자군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정밀한 지도로 만들어 나가는 중이죠. 이런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매 순간 인간이 치료 못할 질병의 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30억 개의 염기쌍을 모두 읽어 유전자 지도를 만들자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1990년에 시작해 2003년에야 끝이 났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이 개발돼 있지 않던 상황이라, 수백 개의 염기를 분석하는 데에도 3~4일이 꼬박 걸렸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분석한 게놈은 여러 기념비적인 논문을 남겼습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20주년을 기념해 1990~2017년에 발표된 유전자 관련 논문 70만3515개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유전에 의한 질병을 다룬 논문이 1660개, 신약과 관련한 논문이 7712개에 달했습니다. 현재 보건당국의 판매 승인을 받았거나 임상시험 중인 약물을 다룬 것만 이 정도입니다. 그만큼 질병 치료와 신약 개발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큰 기여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생물학 연구에 크게 두 가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우선 신약 개발의 표적이 명확해졌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유전자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던 1980년대에는 우연히 약물을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많은 수의 ‘단백질 유전자’가 밝혀지면서, 정확하게 질병 단백질을 타깃하는 방식으로 신약 개발의 방향이 바뀌게 됐습니다.
<네이처>에 따르면 2001년까지 표적 단백질을 정확하게 알고 약물을 개발하는 경우는 절반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간 게놈 프로젝트 초안이 발표된 2001년 이후 매년 단백질 유전자를 언급하는 논문이 매년 1만~2만 개가 쏟아져 나왔고, 2000년대 중반에는 약 2만 개의 단백질 유전자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잠재적인 표적 단백질 2만 개 중 약 10%만이 약물로 개발됐습니다.쓰레기인 줄 알았던 비암호화 영역 유전자, 사실은 핵심 유전자였다또 하나의 변화는 ‘정크 DNA’에 대한 시각입니다. 정크 DNA는 단백질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비암호화 영역’의 유전자입니다.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정크(junk)’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과학자들 사이에는 정크 DNA(비암호화 영역)의 시퀀싱 여부를 두고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전체 유전자 중 정크 DNA가 차지하는 비율이 80~90% 정도인데, 아무 쓸모없는 이 유전자들을 다 읽어내는 데 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고등생물일수록 정크 DNA가 많다는 점을 들어 비암호화 영역까지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모든 유전자를 읽기로 결정했습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비암호화 유전자는 단백질 발현에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여러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자인자들의 활성에 비암호화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비암호화 RNA로는 ‘HOTAIR’이 있습니다. HOTAIR은 염색체 12번 자리에 위치하는 유전자로, 여러 유전자의 발현에 관여합니다. 이 유전자가 중요한 이유는 암의 발생과 큰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2011년 말기 유방암과 대장암에서 HOTAIR 유전자가 과도하게 발현돼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몰리큘러 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암세포에서 HOTAIR의 발현을 억제하자 암의 전이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현재까지 자궁암, 소화기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HOTAIR의 역할을 추적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후성유전학적인 메커니즘에 비암호화 RNA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여러 유전 질병과 관련한 비암호화 RNA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최근 바이오업계의 새로운 모달리티로 주목받고 있는 짧은 간섭 RNA(siRNA) 역시 비암호화 RNA 중 하나입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 20년간 구축해온 생물학 연구들은 이제 유전자 간 네트워크 구조 형성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중요 유전자군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정밀한 지도로 만들어 나가는 중이죠. 이런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매 순간 인간이 치료 못할 질병의 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