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에도 사랑이 필요하다

39세의 청년에게 사형이 집행됐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 목사는 히틀러 암살계획에 참여했다가 1943년 체포되어 종전을 앞둔 1945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본 회퍼가 얘기한 ‘신 없이 신 앞에’라는 문구를 대학시절 처음 접했는데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그가 감옥에서 쓴 신앙고백서인 <옥중서간>을 보면 ‘신이 없는’ 폭압적인 나치정권 속에서, 진실로 ‘신 앞에’ 서려고 했던 고뇌의 무게와 처절함에 숙연함을 느낀다. 이후 ‘신 없이 신 앞에’는 필자에게 어떤 고난과 절망 속에서도 진정성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최고의 잠언이 되었다.


이 말을 경영의 세계에도 대입 해보자. 즉 ‘경영 없이 경영 앞에’는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어느 날 경영과 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 까. 아마 많은 기업과 경영자들이 허둥거리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경영을 업으로 삼는 교수와 경영컨설팅기업도 마찬가질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가면 지금은 ‘경영의 과잉’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경영컨설팅 기업은 최근 인수합병, 해외진출 등 컨설팅 수요의 증가로 큰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성장 또는 위기의 고민에서 스스로의 역량으로 자구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외부의 힘을 빌리고 있다.




필자의 비즈니스 모토 중 일상에서 가장 많이 되새기는 것이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다. 경영에 대한 관점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고유한 프리즘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최근 지인이 번역한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란 책을 받아 두루 훑어보는데 그 동안 필자가 생각하고 있던 관점들과 상당히 일치하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 교수는 추천사에서 <러브캣 Love Is the Killer App: How to Win Business and Influence Friends>과 <러브마크 lovemarks>라는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2003년 2월에 번역 출간된 ‘러브캣’은 당해 구입하려고 했으나 품절이 되어 원서로 보게 되었다. 평상시 비즈니스와 사랑의 역학관계에 대해 관심이 크던 중 눈에 꽂히는 책이었다. ‘킬러 애플리케이션’(Killer Application)은 ‘등장하자마자 다른 경쟁 제품을 몰아내고 시장을 완전히 재편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상품이나 서비스’란 의미인데, 사랑으로 최고의 비즈니스 성과를 만들 수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에 접한 ‘러브마크’도 고객만족을 넘어 진정으로 고객을 생각하는 적절한 표현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접한 책이다. 고객의 가슴에 사랑을 각인한다는 표현에 러브마크 전도사가 되었다. 이경식도 그의 시 <사랑한다는 것은>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젖는 것 때로는 가슴속으로 내려앉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필자가 오래 전부터 ‘사랑’에 올인 한 것은 ‘경영의 대중화’와 ‘경영의 본질’이라는 두 가지 고민의 해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최신 경영시스템의 시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의 혜택을 받지 못하니 주먹구구식 경영이란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럼 ‘경영 없이 경영 앞에’ 상황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은 기업은 늘 대기업을 부러워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 대안이 바로 ‘사랑’이다. 기업에서 경영의 부재를 탓하기 전에 고객과 종업원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성찰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사랑 그 자체가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눈을 통해서 고객에 대한 진정성을 터득하게 되면 마치 선승이 득도를 하듯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의 깨달음으로 그 동안 찾지 못했던 ‘킬러 애플리케이션’과 지속적인 성과창출의 노하우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필자의 경험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과 절절함으로 고객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랑은 돈이 들지 않지만 그 위력은 무한대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질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때론 폄하하기도 한다.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큰 것 한 방을 노린다. 2004년 KBS 일요스페셜에 소개된 일본의 중소기업 ‘주켄공업’의 마츠우라 모토오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그 사람에게 맞는 분위기나 환경을 제공하면 빠르든 늦든 재능을 발휘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금방 엔진이 걸리는 사람, 반년이 지나서 엔진이 걸리는 사람, 혹은 장거리 선수와 같은 사람, 단거리 선수와 같은 사람, 점프선수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즉 개성은 여러 가지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켄에서 낙오한 사람들은 30여 년 동안 한 명도 없었습니다.” <주켄사람들> 책을 보면 당시에 세계적으로 유행한 경영기법이나 도구를 사용했다는 말을 찾아 볼 수 없다. 주켄의 사원모집 방법은 선착순이다. 성별, 학력,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타고온 폭주족도 선착순 내에 포함되면 채용이 된다. 모토오 사장은 이어서 말한다. “기업경영은 하나의 수단에 지니지 않는다. 회사가 부모라면 사원들은 자식이다. 아무리 말썽을 부리는 자식이라도 부모에게는 둘도 없는 보물이다.” 당시 주켄공업은 세계 최초로 100만분의 1그램 톱니바퀴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이렇듯 ‘경영 없이 경영 앞에’ 상황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경영자의 종업원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가 최고의 경쟁력이 된 것이다.





미국 최고의 수제 바구니 제조기업인 롱거버거의 창업자 데이브 롱거버거에 대해 저술가인 로버트 L. 슈크는 이렇게 언급한다. “나는 지금까지 직원들이 고용주를 그토록 칭찬하는 예를 본 적이 없으며, 회사에 대해 그토록 충성심을 보이는 직원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 더욱 감탄스러운 일은 데이브는 대학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경영에 관련된 어떤 교육도 접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의 기적 같은 성공은 그가 사람들을 대하는 품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롱거버거 창업자의 경영관도 ‘경영 없이 경영 앞에’와 닿아있다. “사업이 침체기에 들면 대기업들은 엄청난 돈을 들여 외부 컨설턴트들을 고용한다. 그러나 컨설턴트들은 그 기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겠는가? ‘컨설턴트란 당신의 시계를 보고 시간을 알려 달라고 돈 주고 고용한 사람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가 시계를 차지해 버린다.’ 외부컨설턴트를 고용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당장 내 쫓아라. 그리고는 당신에 직원들에게 가서 문제를 이야기 하고 그들의 도움을 구하라. 다만 이 때 진심으로 말하라. 그러면 그들이 마음을 열고 대답을 해 줄 것이라는 것을 내가 보장한다. 더구나 그것은 돈 한 푼 안 드는 일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은 절망의 시대 그리고 어느 날 눈앞에서 경영이 사라진다 해도 최후에 ‘사랑’이 남아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상황을 보면 암울하다. 정치의 본질에서 갈수록 멀어지는 정치판, 돈이 된다면 법 위에도 군림하는 기업, 아직도 무사안일에 벗어나지 못하는 공공기관, 매년 학부모의 등을 휘게 만드는 대학, 생명의 가치 앞에서 돈이 우선이 되는 병원 등 갈수록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찾아볼 수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 갇혀있는 국민들은 현대판 ‘가렴구주’(苛斂誅求) 세상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영에서 사람과 사랑이 사라지고 오로지 돈만을 추종할 때 철학자 강유원의 충고는 비수와 같다. “한국의 경영학과에서 한국형 경영전략을 만들어 내려면 한국 기업을 연구한 사례가 바탕이 될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학자들 책을 읽어보면 자국의 성공한 기업 사례들을 분석하고 있으며 그것이 강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그런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기업이 있는가. 딱 잘라 말해서 없다. 이른바 한국의 대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법원을 들락거리는 범죄자들이다. 경영학과에서 이런 범죄자 집단을 연구하여 ‘무전유죄, 유전무죄 경영학’, ‘휠체어 경영전략’을 가르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 본 칼럼은 <머니투데이>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