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적극 말렸다

‘때로는 내가 사장을 할 만한 자질이 있나?’라는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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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난 사업가가 되기에는 타고난 환경이 별로이다. 우선 아버지가 교육자였던 분이라 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형제들도 모두 교육공무원 아니면 은행원이라 회사 경영을 배울 만한 환경은 아니다. 게다가 나의 성격도 그리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하다. 화를 내야 할 때도 그 때가 화를 내야 할 때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한참을 지나야 그 걸 깨닫는다. 숫자개념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 대충 계산하고 나중에 후회할 때도 많다. 남들에게 큰 소리치는 것도 싫어하지만 아쉬운 소리하기는 더욱 더 싫다. 이렇게 타고난 환경은 사장의 일반적인 DNA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내가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고 할 때 집안에서 반대가 많았다. 그건 내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많이 닮아서 사람만 좋지 악착같지 못해서 남에게 당하기만 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직장에서 내가 직속으로 모시면서 항상 같이 있던 과장님이나 부장님도 나는 절대로 사업묵이가 아니라고 하면서 현재도 잘하고 있으니 계속 잘하라고 하시면서 말리셨었다.

그런데 사회에서 배운 것은 사장을 할 만한 환경이었다. 우선 경영대학을 나왔고, 코트라에서 국내외의 거시적 시장환경의 흐름을 파악하는 훈련을 받았고, 그 내용을 잘 정리해서 글을 쓰는 훈련을 받았고, 수많은 기업의 사장과 직원을 만나서 그들이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는 지를 보았다. 게다가 내가 근무했던 파나마는 중남미의 주요 거점지역이라 거의 매일 국내 업체들이 출장을 오고, 그들과 바이어 상담을 통역하고 조언을 하는 일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비즈니스에 대한 욕심이 났고, 지금 벌써 15년째 무역과 제조업을 하고 있다. 회사내에서도 나의 직속 상사말고는 대체로 긍정하는 편이었다. ‘그래 홍재화씨라면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들을 잘 사귀니 누구보다 잘할 수있을 거야!’라고 하면서 오히려 사표를 낸 나를 부러워하기까지 하였다.



매드 메틀리의 ‘본성과 양육’, 이 책은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다. 그 논쟁의 한쪽은 선천론(유전론자.본성론자)자이고 다른 한쪽은 경험론자(환경론자.양육론자)이다. 이 책은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과 환경의 영향을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두고 말한다. 생명과학이 발전하면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비만이 될 것인지, 40대에 간염을 걸릴 것인지가 유전자를 통해서 예측할 수 있는 시대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부모잘만나야, 아이들의 삶이 편해진다’는 선천적 운명론이 힘을 맞는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지금 사장을 하고 있지만, 난 사장이 선천적인 면에서는 그리 잘 선택받았다고 할 수없다. 그런데 후천적 환경은 내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자라났다. 그래서 아직 내가 큰 기업체의 사장으로 성장하지 못했나 보다. 기왕에 시작했으니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계속해서 해가야 하겠지만, ‘본성’의 부족은 나로 하여금 ‘타고난 사장’들보다는 시간을 더 들여야 하나보다. 1995년 이후 사업을 하면서 나에게 가장 부족한 사장으로서의 자질을 들라면 내가 사업을 할 때 어머니가 나에게 하시던 말씀 그대로이다. ‘악착같음의 부족’이다. 남들과의 마찰도 거리낌없이 하면서 내 생각을 마구 밀어붙이는 힘, 그게 나에게는 부족했다. 항상 남들이 나로 하여금 불편하지 않을까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더 많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심지어는 나를 불편하게 한 당사자조차도 불편하게 되었다. 발가락양말이 유럽에 수출이 본격화하면서 공장의 시설이 매우 부족했다. 결국 누군가가 투자를 해야 하는 데, 공장의 사장은 자금력이 없었고 나는 늘어나는 수출로 무역금융, 아파트를 담보로 한 대출등을 받을 여력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것을 보고 투자를 줄이려고 했지만, 공장에서는 끝없이 자금이 필요했고, 그 때에 내가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투자한 금액은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나나 공장의 사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 당시에도 ‘이게 아닌 데, 어어어~’하다보니 공장의 규모가 매우 커졌다. 물론 그 당시에는 성장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는 속도가 빠른 만큼 줄어드는 속도도 빨랐다. 그래서 은행의 대출이 말라버릴 때까지 쓴 돈의 절반은 실질적인 투자에 들어갔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 공장의 설비와 인원을 유지하느라고 허비했다. 만약 그 때 핀란드,독일의 파트너들, 그리고 공장의 사장과의 마찰을 감수하면서 빨리 내 생각대로 투자규모를 줄였으면 피해의 정도를 줄였겠지만, 난 그걸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직접적으로 대출을 받은 나는 물론이고, 보충할 자금을 모두 소진하여 다른 당사자들마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벌써 17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몇 번의 굴곡을 겪고, 이제 ‘맨발신발’로 새롭게 다시 일어나고 있다. 회사이름도 ‘드미트리’에서 ‘필맥스’로 바꾸었다. 15년간 써왔던 이름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지만, ‘심기일전’을 위하여 제품명과 브랜드명, 회사명을 일치시켰다. 이제는 내 몸안에 ‘사장DNA’가 어느 정도는 생성된 것같다는 자신감도 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른 사장DNA는 많이 부족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라붙는 ‘끈기’라는 유전자는 유독 많은 것같다. 그렇게 15년을 지낼 수있던 것은 ‘끈기’라는 유전자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 감사할 일 또 생겼다). 경험상으로 보니 사장은 참으로 다양한 DNA를 요구한다. 때로는 민주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때로는 하인이 되어야 하고, 때로는 철면피가 되어야 하고, 때로는 성인군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장들은 외곬수적인 기질만 갖고 있거나, 너무 유약한 사람들이 있다. 모두 다 문제이다. 나는 세상을 몰랐고, 너무 두려워했다. 다행히도 부모님에게서 물러받은 나의 ‘선한 기질’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이 내 대신 나쁜 사람의 역할을 해주어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이 험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모질어야 되!’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둘다 문제가 많다. 그렇다면 세상의 사장들은 어떨까? 내가 보기에 가장 적절한 사장은 ‘본성과 양육’을 모두 적절히 타고난 사장들이 사업을 가장 잘 이끌어가는 것같다. 그것은 바로 2세들이 하는 사업체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사업가적 기질을 이어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한 데다가, 자라면서 아버지의 사업을 보면서 양육된다. 물론 2,3세 기업가라고 모두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중에서 가업을 아버지보다 더 크게 키운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실패하는 사람도 주변의 조언이나 도움없이 시작한 사람보다는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삼성이나 현대같은 회사들을 하나씩 물려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과연 아이들이 사업가적 기질이 있는 지도 걱정해야 한다. 내 아이라고 모두 사업을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매드 메틀리는 그의 책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본성대 양육 논쟁의 역사에서 진정으로 위대한 과학적 발견과 놀라운 각성의 순간들은 모두 어느 한편의 승리라고 못박기가 불가능했다. 이 책에서 찬양했던 실험들, …… 할로우의 원숭이는 특정한 종류의 어미를 좋아하는 유전적 성향을 갖고 있지만 모성이 박탈된 상황에서는 적절하게 발달하지 못한다. 인젠의 들쥐는 사랑에 빠지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특정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 이같은 실험들은 모두 유전자가 환경에 반응하는 감수성의 축도하는 것, 생명체를 유연하게 만드는 수단이라는 것, 경험의 하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양육을 통한 본성만이 무병장수를 보장하는 것이다.” 후천적 사장의 환경에 사장본성의 유전자도 생겨나고 있으니 난 분명 ‘본성과 양육’의 가장 적절한 사례가 될만하다.



요즘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려서 사장을 해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에서 이들을 위한 많은 창업지원을 하고 교육도 하지만. 그 중에서는 성격검사도 있다. 그런 것은 정말 잘하는 거다. 자기의 본성과 사회에서 겪은 경험을 얼마나 잘 엮을 수 있는 지를 아는 것도 사장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