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집단지성에 대하여

시장과 집단지성에 대하여
모든 사람은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게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생각이야. 하지만 난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그게 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판단을 매우 자주 하는 게 사람이야.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패션’이야. 난 패션이야말로 의도적으로 조작된 인간의 욕망이라고 말하지. 우리 패션쇼에 같이 간 적이 있었지. 너희가 중고생일 때 한동안은 의상디자이너를 한다고 해서 같이 보러 다닌 적이 있었잖아. 그런데 거기에서 모델들이 입고 나오는 옷을 입을 수있을 만한 옷이 있었니? 아니지. 그냥 멋있고 아름다운 옷이었지. 물론 디자이너들도 그 옷을 그대로 시장에 내놓지는 않아. 일단 전체적인 디자인이나 색을 보여주기 위함이야. 그러면서 ‘금년에는 이런 식의 옷이 유행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지. 그럼 사람들은 ‘유명한 회사의 디자이너들이 옷을 저렇게 만들었으니, 금년에 유행할 것이고, 나도 저런 옷을 입어야지’하는 생각을 갖게하지.

물론 이런 패션이 스스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어.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노스페이스의 패딩’을 둘러싼 논란이 가장 재미있는 예로 들만한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한동안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꼽히는 노스페이스 브랜드의 패딩점퍼를 가격대 별로 등급을 나눠 소개했어. 거기에 따르면 이 회사의 패딩점퍼를 가격순에 따라 계습을 매겨놓았지. ‘찌질이-일반-중상위권-양아치-있는집 날라리-대장’ 순으로 나눠져있으며, 가장 낮은 찌질이 계급의 패딩점퍼 가격이 무려 25만원이고 , 가장 비싼 대장 계급은 70만원정도 했어. 특히 가격이 높은 점퍼를 설명하는 단계에서는 부모의 뼛골을 빼어먹는다고 해서 ‘등골브레이커’라는 말까지 생겨났지. 그런데 이건 누가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기 보다는 고등학생들이 옷에 대한 과시를 하다보니 값이 비싼 것이 자기네들끼리의 계급을 표시하는 것처럼 여겨졌지. 그런데 옷이란 사실 유행에 민감할뿐더러 수시로 변하는 것이고,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본질을 나타내지는 못하잖아. 그런데도 아이들은 마치 노스페이스를 입지 않으면면 안되고, 될수록이면 비싼 것을 입어야 폼이 난다고 생각하게 된거지.



에두아르도 포터가 쓴 ‘모든 것의 가격’이 그 이야기를 써놓았어. “소비자들은 가끔 자기 의도와 관계없이 자기 욕망의 대상이라며 주어진 재화에 대해 왜 돈을 지불해야 하는 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가끔은 그 재화가 왜 자신에게 바람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특정 다수의 공인되지 않은 선입견에 영향을 받을 경우, 그들은 재화를 팔고 싶어 하는 쪽에서 설치한 가치 조작 함정에 빠지게 된다. 가격은 우리가 이와 같은 인지적 결함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격은 인간의 심리적 변덕, 그들의 두려움, 무의식중에 작용하는 제약에 대한 일종의 지도를 제공한다. 가격은 정해지는 방법과 사람들이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준다.”



아빠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접하는 것들이 제대로 정해진 가격인 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어. –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생명에 대한 값, 행복의 값을 높이 받는다. 그게 맞는 것일까?

– 아이를 적게 낳는 사회일수록 여성의 가격은 높아진다. 맞는 것도 같고!

– 오늘 날의 미국 노동자들은 1972년보다 더 낮은 가격을 받는다. 발전이 아니네!

– 문화에 따라 많은 것들의 가격이 달라진다. 당연하지. 그런데 왜 정자는 자유롭게 사고 팔면서 난자의 매매는 법이 금지했을까?

– 가난할수록, 종교의 교리가 많은 대가를 요구할수록 그 종교는 오래간다? 원리주의가 힘을 받을 받는 이유이구만!

– 우리 세대의 욕구 때문에 미래 세대의 욕구가 제한된다. 그게 우리 미래의 가격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깨달을 것은 “바로 가격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야. 가격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간과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것은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결정을 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 사회를 정당하게 조직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유시장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개개의 행위들에 상대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시장은 세계를 완벽하게 조직할 수있다는 것이야. 인간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즉 그들의 선택이 그들의 복지를 어떤 식으로 향상시킬지에 대해 일관성있는 선호와 신념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결정은 옳은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 바 ‘완벽한 가격’에 대한 믿음이고,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효율적 시장’의 가설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이미 시장은 모든 사람이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완전히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지. 그냥 가설일뿐이야. 현실을 매우 단순화시킨.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과연 최근에 말하는 ‘집단 지성은 항상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많은 의견이 올라오고 있고, 그 중에서 잘못되거나 왜곡된 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바로 수정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집단지성은 항상 옳다고 한다. 그게 맞을까? 그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완전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고, 또한 정보의 왜곡에 대하여 합리적 판단을 할 수있다는 가설에 근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트위터에서도 집단지성이란 말이 잘 쓰이지는 않아. 그것 조차도 일시적인 유행으로 흘러가버린 셈이지. 하지만 그 말이 한동안은 마치 거역할 수없는 진실처럼 여겨진 적도 있잖아.



뭔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시장이나 집단지성이나 각 개인은 모두가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정보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 결과 시장에서는 ‘최적의 가격’이 나오고, 집단지성에서는 ‘진실’이 도출된다는 거야. 그런데 둘다 사람들이 그 순간에 무엇을 좋아하는 가의 문제로 귀착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시적인 흐름일 뿐이지. 유행이란 말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고, 시장은 그 유행에 따라 춤추는 가격을 내놓지. 집단지성이란 것도 그 때에 어떤 생각들이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흘러다니는 가에 따라 일시적인 결론을 내놓을 뿐이지, 그게 결코 진리는 아니지.



내가 보기에는 ‘시장의 실패’만큼이나, ‘집단지성의 오류’도 자주 일어나는 것같아. 그리고 그 오류를 수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크기만큼 우리는 더 큰 대가를 치루어야 하지. 그래서 아빠는 너희들이 남이 무엇을 하는 것은 무조건 따라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가졌으면 해. 이런 걸 보면서 아빠는 너희들에게 코미디에서 자주 나오는 말을 해주고 싶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마라!

사진출처 : 미디어투데이, 2012.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