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계속되는 삶…영화 '노매드랜드'

클로이 자오 감독 세 번째 작품…아카데미 유력 후보작

'집은 허상인가, 마음의 안식처인가'
살던 도시가 경제적으로 붕괴하면서 지역의 우편번호조차 사라지고, 남편도 떠나보낸 중년의 여성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은 홀로 밴을 타고 노매드(nomad. 방랑자)의 삶을 시작한다.
길 위에서 만난 노매드들도 모두 각자의 사연을 품고 길 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떠도는 삶은 '히피'(hippie)들의 그것처럼 자유롭고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평생 노동을 해도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이들이지만, 그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유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생을 끝내려 했을 때 자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강아지 두 마리를 버리고 홀로 떠날 수가 없어서, 누군가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병원에서 낭비하기 싫어서, 누군가는 부모를 잃은 슬픔을 달래려고….
영화 '노매드랜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겨루게 된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와 함께 또 하나의 가장 미국적인 영화다.

'미나리'가 미국 땅에서의 안정적인 삶과 새로운 희망을 찾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이민자의 이야기로 과거의 뿌리를 보여준다면, '노매드랜드'는 완벽하지 않은 사회 시스템 안에서 소외된 이들이 다른 삶을 선택하고 이어나가는 현재의 가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주로 2008년 미국에서 전 세계로 확산한 금융 위기 당시 생활이 무너진 노동자들이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 기업 아마존은 자동차에 살면서 단기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캠퍼포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펀 역시 캠퍼포스에서, 캠핑장에서, 공사 현장에서 임시 노동자로 삶을 이어간다.

밴에 살면서 스페어타이어를 갖추지도 않고 타이어를 가는 방법도 몰랐던 그는 노매드 캠프에서 길 위의 생존법을 배우고, 다른 노매드들과 필요 없는 물건을 교환하고, 손뜨개로 직접 만든 물건과 마음의 위로를 나눈다. 만남은 영원하지 않아서 누군가는 시한부의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마감하기 위해 마지막 길을 떠나고, 누군가는 막 태어난 손주가 있는 따뜻하고 안락한 지붕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혼자 남는 시간은 피할 수 없다.

펀이 마주한 한없고 처연한 고독에 보는 이의 마음이 먹먹해지지만, 그는 쉽사리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캠핑장에서 만나 다정함을 나눈 남자와 함께 그의 다정한 가족이 있는 집에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펀은 다시 빗속으로 길을 떠나고 거친 파도를 마주한다.
펀이 만나는 다른 노매드들은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노매드들이 출연해 자기 이야기를 한다.

카메라는 기교 없이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펀은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저널리스트인 제시카 브루더가 쓴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만큼 영화 역시 다큐멘터리에 가까워 보인다.

펀이 떠도는 미국 서부의 황량하고도 압도적인 풍광이 서정성을 더한다.

중국 베이징 출신의 젊은 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는 세 번째 장편인 이 영화로 지난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여성 감독으로서는 역대 두 번째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이후 전 세계에서 200여 개의 상을 휩쓸며 주목받고 있다.

연출은 물론 각색과 편집까지 맡아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등 개인으로 받은 상만 86개다.

지난달 골든글로브에서 아시아계 여성 감독 최초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자오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로데오 카우보이'를 보고 '노매드랜드'의 제작자로서 자오 감독을 연출자로 캐스팅했다가 자오 감독의 설득에 결국 주연을 맡았다.

맥도먼드는 실제 자신이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그릇 세트를 가져와 펀이 밴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다니는 소품으로 사용했고, 직접 뜨개실로 냄비 받침을 만들어 나누고,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펀이 되어갔다.

그 역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있다. 4월 15일 개봉.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