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뒤 벽 없앤 18번홀, ANA 인스피레이션 승부의 변수 되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ANA 인스피레이션이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 힐스 컨트리클럽 다이나 쇼 코스(파72) 18번 홀은 사방이 연못이다.

샷이 짧아도, 길어도 볼은 연못에 빠진다. 두 번 만에 그린에 볼을 올리려면 긴 클럽을 잡아야 하는데 단단한 그린에 맛은 공이 그린 너머 연못까지 튀어 나가는 일이 흔하다.

투온이라는 승부수를 띄우려면 연못에 볼이 빠질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작년에는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됐다. 주최 측이 큰 가설 벽을 그린 뒤에 세워 그린을 넘어갈 만큼 길게 친 공도 벽을 맞고 멈췄다.

심지어 가설 벽을 맞고 그린으로 튀어 들어오는 행운도 있었다.

지난해 우승자 이미림(31)은 이 가설 벽 덕을 톡톡히 봤다. 최종 라운드 18번 홀(파5)에서 이미림은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공략했다.

공은 다소 길게 떨어져 그린 뒤편까지 굴러갔지만, 그린 뒤에 설치된 커다란 가설 벽에 맞고 멈췄다.

벌타 없이 드롭한 이미림은 칩샷으로 이글을 잡아내 극적으로 연장전에 합류해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올해는 18번 홀에서 투온을 시도할 때 이런 '안전판'을 기대할 수 없다.

골프의 묘미를 훼손했다는 비난에 올해는 가설 벽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작년처럼 18번 홀에서 마음껏 투온을 감행하던 선수들도 몸을 사릴 것으로 보인다.

대회에 앞서 이틀 동안 연습 라운드를 돌았던 선수들은 투온을 시도했다가 볼이 그린을 넘어가 물에 빠지는 상황을 마주쳤다.

라이언 오툴(미국)은 5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했는데 공이 튀어 그린을 넘어가 물에 빠졌다.

제니퍼 컵초(미국)는 4번 아이언으로 두 번째 샷을 쳤다가 똑같은 일을 겪었다.

넬리 코르다(미국)는 5번 아이언 쳐서 그린을 넘어가자 6번 아이언을 꺼내 다시 쳤다.

6번 아이언으로 친 볼은 조금 짧아 그린 앞에 떨어졌다.

대회 때는 18번 홀에서 한 번도 투온을 시도한 적이 없다는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도 연습 라운드 때 5번 아이언으로 투온에 도전했다가 볼이 그린 너머 연못에 빠졌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멜 리드(잉글랜드)는 "단단한 그린에 떨어진 볼이 튀어 나간다면 작년보다 투온을 시도하는 선수가 줄어들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장타자들은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넬리 코르다는 "투온을 시도할지는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렉시 톰프슨(미국)은 "그린에 볼을 멈춰 세울 만큼 높은 탄도로 칠 수 있다면 시도하겠지만, 6번 아이언이 넘어간다면 돌아가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다만 톰프슨은 "상황에 따라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폭발적인 장타를 휘두르는 마리아 파시(멕시코)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두 번째 연습 라운드 때는 7번 아이언으로 투온했다.

그린이 얼마나 단단하냐가 18번 홀 승부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린이 단단하면 아무리 장타자라도 투온을 감행하기 어렵다.

다이나 쇼 코스 그린은 단단하기로 악명이 높다.

뜨겁고 건조한 날씨라면 그린은 더 단단해진다.

최종 라운드 때는 기온이 섭씨 37도까지 오른다는 예보다.

캐서린 커크(호주)는 주최 측이 최종 라운드나 연장전에서 극적인 승부가 연출되기를 바란다면 그린을 부드럽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LPGA투어 경기 운영 분과위원회 부위원장 수 위터스는 "월요일 연습 라운드 때 그린이 너무 딱딱해 물을 뿌렸다"고 밝혔다.

대회 때도 물을 뿌려 그린을 부드럽게 조정할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투온이 어렵다면 100야드 안쪽 웨지샷이 정교하고 퍼트에 강한 선수가 유리하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인 박인비(33)와 세계랭킹 1위 고진영(26)은 가설 벽이 없어지고 그린이 단단하다면 우승 확률이 더 올라간다는 뜻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