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우수 인종실험 '레벤스보른' 피해자의 뿌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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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번역 출간
1942년 8월, 나치의 지배를 받던 유고슬라비아 첼예(현 슬로베니아 도시)에서 인종 검사가 이뤄졌다. 흰 피부와 파란 눈, 금발 등 순수 아리안 혈통의 특징을 보이는 아이들은 독일로 보내졌다.
생후 9개월 된 '에리카 마트코'도 이 과정을 거쳐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란 이름의 독일인으로 자랐다.
'레벤스보른'(생명의 샘이라는 뜻) 피해자인 욀하펜(80)은 최근 번역 출간된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휴머니스트)에서 전쟁 범죄의 실상을 고발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독일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20여 년간 레벤스보른의 실체와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조사해왔다.
다른 레벤스보른 피해자들과 함께 '레벤스푸렌'(생명의 흔적이라는 뜻)이란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통상 레벤스보른은 나치가 친위 대원(SS)과 '순수한 혈통'을 가진 여성이 성관계를 갖게 한 뒤 생겨난 아이들을 입양시키는 인종 실험으로 알려졌지만, 저자처럼 넓은 범위에서 우수 혈통의 아이들을 다른 나라에서 강제로 독일로 데려온 경우도 포함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전후 독일에서 성장했다.
10살 무렵 자신에게 '에리카 마트코'란 원래 이름이 있고, 위탁 아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엔 전쟁으로 많은 아이가 고아가 됐기 때문에 자신도 처지를 받아들이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태생에 대한 궁금증을 묻어둔 채로 살던 저자는 쉰여덟 살이던 1999년 독일 적십자사에서 걸려온 "친부모를 찾고 싶으십니까?"라는 전화를 받고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한다.
저자는 "과거에 매달리는 것보다 현재를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나름 스스로 설득하고 살았지만, 과거에서 무얼 발견하게 될지 두려워 문제를 회피했음을 알고 있었다"며 "전화를 받았을 때 드디어 진실을 알아낼 기회가 왔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1944년 1월 레벤스보른에서 발급한 예방접종 증명서, 같은 해 8월 나치 조직이 발급한 위탁 계약서 겸 인수증 등 자신이 가진 서류를 토대로 과거를 찾고자 시도한다.
저자는 독일 곳곳의 기록보관서와 유럽 여러 나라 정부의 도움을 받아 레벤스보른의 진실을 파헤치며, 독일 내 도시와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도 직접 찾아간다.
저자는 주요 나치 전범들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기록도 살피던 중 1944년 레벤스보른 직원들이 작성한 잿빛 인쇄용지들을 발견한다.
473명의 아이 신원이 적힌 서류 속에서 '에리카 마트코'라는 기록을 확인하고서 "내 진짜 이름을 찾았다"고 말한다.
출생일과 이송지 및 이송날짜 등이 적힌 기록이었다.
슬로베니아 정부로부터 같은 이름의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혼란을 겪었다는 그는 이 기록을 통해 자신의 목적과 정체성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납치돼 독일로 이송된 적어도 25명의 유아 가운데 하나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성이 '마트코'인 사람들을 찾은 뒤 슬로베니아로 날아가 이들을 차례로 만난 뒤 일부 '마트코'의 타액 샘플을 채취해 독일로 돌아온 뒤 유전자 검사를 맡긴다.
한 '마트코' 가족과 93.3%의 확실성으로 2차 혈족이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그 가족 사촌과의 샘플 분석에서는 98.9%의 확실성으로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결과를 받았다.
저자는 "나는 긍정적인 것만 보기로 했다.
나는 요한과 헬레나의 딸인 에리카 마트코이고, 루드비그는 적어도 내 오빠라는 것은 확실하다"며 "적어도 내 친부모가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무척 큰 위로였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출생과 이후 삶에 얽힌 비밀을 풀 열쇠를 지닌 것으로 생각한 같은 이름의 '에리카 마트코'를 만나지는 않는다.
저자는 "그 역시 레벤스보른의 희생자인 이 병약한 여인에게 내 필요를 강요할 권리는 없었다.
나는 과거를 이해할 뿐 아니라 용서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강경이 옮김. 272쪽. 1만6천원. /연합뉴스
1942년 8월, 나치의 지배를 받던 유고슬라비아 첼예(현 슬로베니아 도시)에서 인종 검사가 이뤄졌다. 흰 피부와 파란 눈, 금발 등 순수 아리안 혈통의 특징을 보이는 아이들은 독일로 보내졌다.
생후 9개월 된 '에리카 마트코'도 이 과정을 거쳐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란 이름의 독일인으로 자랐다.
'레벤스보른'(생명의 샘이라는 뜻) 피해자인 욀하펜(80)은 최근 번역 출간된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휴머니스트)에서 전쟁 범죄의 실상을 고발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독일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20여 년간 레벤스보른의 실체와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조사해왔다.
다른 레벤스보른 피해자들과 함께 '레벤스푸렌'(생명의 흔적이라는 뜻)이란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통상 레벤스보른은 나치가 친위 대원(SS)과 '순수한 혈통'을 가진 여성이 성관계를 갖게 한 뒤 생겨난 아이들을 입양시키는 인종 실험으로 알려졌지만, 저자처럼 넓은 범위에서 우수 혈통의 아이들을 다른 나라에서 강제로 독일로 데려온 경우도 포함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전후 독일에서 성장했다.
10살 무렵 자신에게 '에리카 마트코'란 원래 이름이 있고, 위탁 아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엔 전쟁으로 많은 아이가 고아가 됐기 때문에 자신도 처지를 받아들이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태생에 대한 궁금증을 묻어둔 채로 살던 저자는 쉰여덟 살이던 1999년 독일 적십자사에서 걸려온 "친부모를 찾고 싶으십니까?"라는 전화를 받고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기로 한다.
저자는 "과거에 매달리는 것보다 현재를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나름 스스로 설득하고 살았지만, 과거에서 무얼 발견하게 될지 두려워 문제를 회피했음을 알고 있었다"며 "전화를 받았을 때 드디어 진실을 알아낼 기회가 왔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1944년 1월 레벤스보른에서 발급한 예방접종 증명서, 같은 해 8월 나치 조직이 발급한 위탁 계약서 겸 인수증 등 자신이 가진 서류를 토대로 과거를 찾고자 시도한다.
저자는 독일 곳곳의 기록보관서와 유럽 여러 나라 정부의 도움을 받아 레벤스보른의 진실을 파헤치며, 독일 내 도시와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도 직접 찾아간다.
저자는 주요 나치 전범들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기록도 살피던 중 1944년 레벤스보른 직원들이 작성한 잿빛 인쇄용지들을 발견한다.
473명의 아이 신원이 적힌 서류 속에서 '에리카 마트코'라는 기록을 확인하고서 "내 진짜 이름을 찾았다"고 말한다.
출생일과 이송지 및 이송날짜 등이 적힌 기록이었다.
슬로베니아 정부로부터 같은 이름의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혼란을 겪었다는 그는 이 기록을 통해 자신의 목적과 정체성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납치돼 독일로 이송된 적어도 25명의 유아 가운데 하나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성이 '마트코'인 사람들을 찾은 뒤 슬로베니아로 날아가 이들을 차례로 만난 뒤 일부 '마트코'의 타액 샘플을 채취해 독일로 돌아온 뒤 유전자 검사를 맡긴다.
한 '마트코' 가족과 93.3%의 확실성으로 2차 혈족이라는 결과를 받았지만, 그 가족 사촌과의 샘플 분석에서는 98.9%의 확실성으로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결과를 받았다.
저자는 "나는 긍정적인 것만 보기로 했다.
나는 요한과 헬레나의 딸인 에리카 마트코이고, 루드비그는 적어도 내 오빠라는 것은 확실하다"며 "적어도 내 친부모가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무척 큰 위로였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출생과 이후 삶에 얽힌 비밀을 풀 열쇠를 지닌 것으로 생각한 같은 이름의 '에리카 마트코'를 만나지는 않는다.
저자는 "그 역시 레벤스보른의 희생자인 이 병약한 여인에게 내 필요를 강요할 권리는 없었다.
나는 과거를 이해할 뿐 아니라 용서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강경이 옮김. 272쪽. 1만6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