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Focus] 몸집 불리고 있는 ‘프로탁 패밀리’ 핵심은 단백질 분해 메커니즘

프로탁으로 대표되는 단백질 분해 시스템(디그레이더·degrader)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떤 단백질 분해 메커니즘을 이용하느냐’이다.

체내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세포 소기관은 두 개다. 프로테아좀과 리소좀이다. 단백질은 3차원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잘못 접힌 단백질이나 변이가 일어난 단백질은 주로 프로테아좀이 처리한다. 반면 수명을 다한 미토콘드리아 같은 세포 소기관, 박테리아와 같은 병원체 등 큰 물질은 대부분 리소좀이 담당한다.두 소기관의 작업 방식을 비교하자면 프로테아좀은 ‘원샷 원킬’의 대가다. 둥근 원통 형태로 생긴 프로테아좀은 4개 이상의 유비퀴틴이 붙은 단백질을 인식해 분해한다. 유비퀴틴이 붙은 단백질을 잡아 한 번에 하나씩 제거해나간다. 이를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UPS)’이라고 부른다.

반면 리소좀은 ‘그물 낚시’ 방식으로 거대한 물질을 제거한다. 불량 단백질을 감싸고 있는 소포체(오토파고좀)와 결합해 단백질을 분해한다. 리소좀의 막과 오토파고좀의 막이 만나 하나로 합쳐지고, 오토파고좀 내부에 있는 단백질 덩어리는 리소좀 안의 분해효소들에 의해 잘게 부서진다. 이 과정을 ‘오토파지’라고 부른다.

리소좀이 관여하는 오토파지 현상은 UPS 메커니즘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서야 밝혀졌다. 이전부터 리소좀이 단백질이나 수명을 다한 소기관을 분해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자세한 메커니즘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1990년대가 되어서야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오토파지의 메커니즘 일부가 규명됐다. 오스미 교수는 오토파지가 일어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 15개를 찾은 공로로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 덕분에 오토파지 메커니즘을 이용한 단백질 디그레이더가 개발될 수 있었다.

프로탁은 3가지의 물질로 구성돼 있다. 타깃 단백질(POI)에 결합하는 리간드(워헤드), E3 리가아제에 결합하는 리간드(바인드), 두 단백질을 연결하는 링커다. 타깃 단백질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진 E3 리가아제는 단백질에 여러 개의 유비퀴틴을 붙인다. 유비퀴틴이 붙은 단백질은 UPS 메커니즘에 의해 분해된다.

프로탁은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가 축적된 UPS를 이용하는 데다 강력한 분해 능력을 가지고 있어, 여러 디그레이더 중 가장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 만 태생적인 한계 역시 존재한다.프로탁이 가진 한계점을 중심으로 다른 디그레이더가 이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 알아봤다.


프로탁의 미니 버전 ‘분자 접착제(Glue)’
분해 기전 프로탁과 동일하게 UPS 유도해 타깃 단백질 분해
특징 저분자 물질. 세포 투과율 높음
타깃 질병 프로탁과 동일

분자 접착제(Glue)는 프로탁과 동일한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디그레이더다.
다만 프로탁처럼 두 개의 저분자 물질을 링커로 연결하는 구성이 아니라, 디그레이더 자체가 하나의 작은 분자다. 양쪽에는 E3 리가아제와 타깃 단백질에 각각 결합할 수 있는 화학 물질이 집게발처럼 존재한다. 그만큼 크기가 매우 작고 세포 투과성도 높다.또 프로탁과 마찬가지로 활성 부위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즉 저해제 개발이 어려운 질병 단백질을 타깃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이때문에 개발 중인 대다수의 분자 접착제가 기존에는 ‘약물 개발이 불가능한(un-druggable)’ 타깃으로 분류되던 단백질을 표적한다.
분자 접착제 연구를 리딩하는 기업은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MS)이다. 정확히 말하면 2019년 BMS가 인수한 바이오텍 셀진이 많은 수의 분자 접착제를 개발했다. 현재 임상에 진입한 4개의 분자 접착제 중 3개가 BMS의 파이프라인이다.

나머지 하나는 노바티스의 파이프라인 ‘DKY709’다. 노바티스는 지난해 미국의 바이오텍 오리오니스 바이오사이언스와 4년간의 연구협력 계약을 맺었다. 오리오니스가 보유한 분자 접착제 발굴 기술 플랫폼 ‘알로 글루(Allo-Glue)’를 이용해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바티스는 임상 1상을 통해 고형 암 타깃인 DKY709를 단독요법과 자사 항 PD-L1 치료제인 ‘PDR001’과의 병용 효과를 확인할 예정이다.

C4테라퓨틱스는 올 상반기 안에 골수종, 림프종을 타깃하는 파이프라인 ‘CFT7455’의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노바티스의 ‘DKY709’, BMS의 ‘CC-92480’, ‘CC-99282’, C4테라퓨틱스의 ‘CFT7455’는 모두 ‘이카로스 징거핑거 전사인자 패밀리(IKZF)’를 표적으로 한다. IKZF에 속하는 세 개의 전사인자는 B세포의 증식과 분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활성부위가 적어 지금껏 약물로 개발되지 못한 사례다. 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연구도 많이 됐고, 시장성도 커 개발에 성공한다면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분자 접착제를 개발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방법론이 있다. 하나는 기존에 알려진 분자 접착제와 E3 리가아제, 타깃 단백질 등의 크리스털(결정) 구조를 분석해 직접 설계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E3 리가아제 바인더를 최대한 많이 확보한 뒤, 여러 가지 단백질을 뿌려 많이 분해되는 단백질을 찾는 것이다. 즉 E3 리가아제에 붙는 리간드 중 구조상 결합이 가능한 단백질을 스크리닝하는 방식이다.
아직까지는 설계가 너무 어려워 대다수 기업들이 후자의 방법을 채택해 개발 중이다.

언뜻 보면 단순 노동에, 많은 에너지가 투입될 것 같은 분자 접착제에 여러 기업이 투자하는 이유는 약물 개발 가능성 때문이다. 프로탁도 1000달톤 이하의 저분자 물질이지만, 환자들의 접근성이 쉬운 경구 투여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크기가 작을수록 유리하다.

또 프로탁은 3가지 요소가 결합된 형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생산 공정이 까다롭다. 그만큼 대량생산이 어렵고 약가가 높아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분자 접착제는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응집된 단백질 처리반 ‘오토파지’
① 아우탁(AUTAC)
분해 기전 cGMP로 오토파지 유도
특징 응집 단백질에 의한 질병에 적용
타깃 질병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 뇌질환, 제2형 당뇨병, 일부 암 등

프로탁의 한계점 중 하나는 한 번에 한 개의 단백질만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단백질이 응집돼 발생하는 질환의 경우 프로탁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대표적으로 파킨슨, 알츠하이머와 같은 주요 뇌질환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제2형 당뇨병, 일부 암에서도 단백질의 응집이 원인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오토파지를 이용한 디그레이더가 개발된 배경이다.

국내에서는 ‘오토탁(Autotac)’이라고도 불리는 아우탁(Autac)은 프로탁과 구성이 유사하다. 워헤드와 링커까지는 프로탁과 동일하지만, E3 리가아제 결합 리간드 대신 ‘고리형 구아노신 일인산(cGMP·cyclic Guanosine MonoPhosphate)’이 연결돼 있다.

cGMP의 역할은 E3 리가아제와 동일하다. 타깃 단백질에 여러 개의 유비퀴틴을 결합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CGMP가 붙은 단백질은 프로테아좀이 아닌 리소좀으로 끌려간다 ‘p62’이라는 물질 때문이다. 아우탁에서는 ‘어댑터’로 불리는 이 물질은 유비퀴틴의 끝 자락에 붙어 오토파지를 유도한다.

오토파고좀이 만들어지기 전 세포 내부에는 ‘격리막(phagophore)’이 존재한다. 격리막에 있는 ‘LC3’이라는 물질에 특정 단백질이 결합하게 되면 격리막이 모양을 바꿔 구 형태의 오토파고좀이 된다.
p62는 LC3에 결합하는 단백질 중 하나다. ‘p62-유비퀴틴-아우탁’으로 연결된 단백질 복합체가 LC3에 결합하면, 오토파고좀이 만들어진다. 결국 아우탁의 일부인 타깃 단백질은 리소좀에 의해 모두 분해된다.

아우탁의 가장 큰 장점은 커다란 막이 타깃 단백질을 감싸안기 때문에 응집된 단백질도 모두 분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그간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던 뇌질환 분야에서 큰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오토파지에 대한 연구가 UPS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다.

② 아텍(ATTEC)
분해 기전 LC3에 직접 연결 가능한 링커를 사용해 오토파지 유도
특징 헌팅턴무도병에 적용 가능한 물질이 연구 단계에서 개발됨
타깃 질병 다양한 질병 가능

아텍(ATTEC)은 링커로만 이뤄진 디그레이더다. 한쪽은 타깃 단백질과 결합하고, 다른 한쪽은 LC3과 결합한다. 분자의 형태로만 따지자면 프로탁보다는 분자 접착제에 가깝다. 분자 접착제와 마찬가지로 세포 투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타깃 단백질과 결합력이 높은 작은 크기의 화학 분자를 개발하기가 어렵다.

현재로서는 헌팅턴무도병에 대한 아텍만 개발된 상황이다. 헌팅턴무도병은 30~50대에 주로 발병하는 유전질환으로, 뇌세포가 점차적으로 사멸해 신체 움직임에 문제가 발생한다.
연구 단계에서 개발된 아텍은 독성 변이 헌팅턴 단백질과 LC3에 결합할 수 있다. mHTT와 결합한 아텍이 LC3과 붙으면 이를 중심으로 오토파고좀이 생겨 리소좀에 의해 분해된다.

아직은 여러 타깃 단백질이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타깃 단백질을 바로 LC3과 결합시킬 수 있고, 모든 세포에 적용 가능하며 타깃 단백질의 범위가 넓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세포 밖 단백질을 책임지는 ‘라이탁(LYTAC)’
분해 기전 세포막의 M6PR 수용체에 결합해 엔도좀 형성
특징 세포막 단백질, 세포 외부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는 유일한 디그레이더
타깃 질병 각종 암, 면역질환 등

라이탁(LYTAC)은 세포막과 세포 외부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는 유일한 디그레이더다. 라이탁의 구조는 항체에 기다란 단백질 사슬이 달려 있고, 단백질 사슬에 ‘M6P(Mannose 6 Phosphate)’라는 당 분자가 열매처럼 매달려 있다.

우리 세포막에 존재하는 ‘M6PR’ 수용체에 M6P가 결합하면, 수용체 주변부가 모두 세포 안쪽으로 함입된다. 함입된 부분은 세포 막에서 떨어져 나와 세포 안쪽에서 작은 소포체를 만든다. 이처럼 세포 밖에서 안쪽으로 물질이 들어와 형성된 소포체를 ‘엔도좀’이라고 부른다. 엔도좀 역시 오토파고좀과 마찬가지로 리소좀과 결합해 분해된다.

M6P 사슬과 연결된 항체는 타깃 단백질에 결합하는 역할을 맡는다. 막단백질이나 외부 단백질과 항체가 결합한 뒤 M6PR에 의해 세포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항체를 사용하다 보니 타깃 단백질에 대한 선택성이 높은 반면, 분자량이 커진다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신호를 전달하는 상위 단계의 단백질의 상당수가 세포막에 존재하기 때문에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발암원으로 알려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나 면역항암제의 타깃인 PD-L1 등이 대표적인 막단백질이다. 또 알츠하이머 환자에게서 많이 발현된다고 알려진 아포리포프로틴4(ApoE4) 역시 세포 밖에 존재하는 단백질이다. 현재 미국의 리시아 테라퓨틱스가 암, 자가면역 질환을 대상으로 라이탁 파이프라인을 개발 중이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