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함 잃은 감독들…신영철은 의도했고 산틸리는 흔들렸다(종합)

겉옷 벗은 신영철·선수와 대립한 산틸리…보기 드문 '장외 신경전'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은 겉옷을 벗고 항의했고, 로베르토 산틸리 대한항공 감독은 상대 선수와 대립했다. 1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도드람 2020-2021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 3차전에서 대한항공과 우리카드는 동점이 반복되는 팽팽한 스코어 외에도 치열한 장외 신경전을 벌였다.

우리카드의 세트 스코어 3-0(26-24 25-20 25-19) 승리로 끝난 이날 경기에서는 역전과 재역전, 듀스 등 접전 요소가 모두 등장했다.

옐로카드는 물론 레드카드도 나왔다. 먼저 옐로카드를 받은 사람은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이다.

8-8에서 정지석의 공격으로 대한항공이 역전한 상황. 우리카드는 대한항공 이수황의 더블 콘택트 여부에 대한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더블 콘택트가 아니라는 판독 결과가 나오자 신 감독은 정장 상의를 벗고 감독관석을 향해 거칠게 항의했다. 마스크까지 벗고 강력히 항의하는 심 감독에게 주심은 경고를 줬다.
경기 후 신 감독은 이 장면을 돌아보며 "아마 제가 처음 그랬을 것"이라며 '하하' 웃었다.

이후 "비디오판독이 애매했다. 선수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며 "잘못했지만 감독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했다"고 말했다.

신 감독의 계획은 잘 맞아떨어졌다.

우리카드 세터 하승우는 "저희 득점이 아닌가 싶었는데, 저쪽으로 넘어가니 감독님도 흥분하고 저희도 흥분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항의는 내가 할 테니 너희는 즐기라'고 하셨다"며 "그래서 잊고 경기를 즐기려고 했다"고 떠올렸다.

신 감독의 항의 후 흐름은 대한항공이 가져간 듯했다.

하지만 우리카드는 나경복과 알렉스 페헤이라의 추격포로 20-20으로 따라잡은 뒤 24-24 듀스를 만들었다.

대한항공 정지석의 세트 범실이 나오면서 우리카드는 25-24 역전 세트포인트를 가져갔다.

대한항공은 우리카드의 포히트 범실을 주장했지만, 비디오판독 결과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알렉스가 서브에이스를 내리꽂으면서 1세트는 우리카드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환호하는 알렉스와 예민한 산틸리 감독이 신경전을 벌였다.

마치 야구의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난 듯 양 팀 선수들과 코치, 심판들이 주변에 모여 두 사람을 말리고 상황을 정리했다.
2세트 시작과 함께 주심은 산틸리 감독을 향해 레드카드를 들었다.

대한항공은 벌칙점으로 우리카드에 1점을 줬다.

이어 신 감독이 레드카드를 받았고, 대한항공도 1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 신경전의 승자도 우리카드였다.

경기는 누가 평정심과 집중력을 잃지 않느냐의 싸움으로 진행됐다.

2세트 흐름을 잡은 팀은 우리카드였다.

이후 코트 위 대립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카드는 그대로 분위기를 이어가 3차전 승리를 따냈다.
경기 후 산틸리 감독은 "알렉스가 저에게 이탈리아어로 농담식의 말을 했다"며 흥분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 대립이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면서 "게임은 게임이다.

어떤 상황이 있든 배구를 해야한다"며 "내일은 우리가 승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알렉스는 "대한항공 벤치에 있는 코치들이 내 이름을 한국어로 계속 불러서 그만하라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스와 산틸리 감독의 대립을 지켜본 신 감독은 이 상황도 의도 대로 끌고 갔다며 미소를 지었다.

신 감독은 "알렉스는 서브 득점으로 세리머니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산틸리 감독이 의도적으로 자극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알렉스에게 '감독인 내가 대신 할 테니 너는 경기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 알렉스와 이런 상황에 대비한 대화를 자주 해왔다면서 "챔프전에서는 어떤 상황이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휩쓸리면 힘들어진다고 미리 선수들에게 말해왔다.

알렉스에게는 흥분하지 말라고 해왔다"고 밝혔다.

이날 신 감독은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하면 평소보다 더 격하게 칭찬하고 손뼉을 쳐줬다.

신 감독은 "경기에서는 사나운 퍼포먼스를 해줘야 하는데, 우리 선수들은 싸움닭이 아니다.

그래서 선수들과 같이 호흡하고 액션을 해줘야 한다"며 웃었다. 우리카드 나경복은 "양 팀 감독님이 흥분했기 때문에 오히려 저희가 기죽으면 안될 것 같아서 뛰어다녔고, 그래서 경기가 잘 풀렸다"며 신 감독의 '오버 액션'을 보고 더욱 집중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