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아르메니아 학살 인정에…에르도안 "정치화 의도" 비판

터키 외무부 "근거 없는 역사 왜곡" 반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genocide)로 인정한 데 대해 터키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미국의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인정에 "제삼자가 한 세기에 걸친 논란을 정치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는 역사학자들이 다뤄야 할 논쟁"이라며 "제삼자가 정치화하거나 터키에 대한 간섭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터키는 상호존중과 선린관계에 따라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추모일인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집단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했다.

미국 대통령이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추모 성명에서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터키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1915년 사건'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성명을 강력히 거부하고 비판한다"고 반발했다. 외무부는 성명에서 "미국 대통령의 성명은 학문적·법적 근거가 없으며 어떤 증거로도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1915년 사건의 본질은 오늘날 정치인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런 태도는 천박한 역사 왜곡에 도움을 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 대통령의 성명은 지역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고 국가를 양극화하는 것 외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할 것"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미국의 발언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상호 신뢰와 우정에 깊은 상처를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미국 대통령은 특정 정치 세력을 만족시키는 것 외 아무런 목적도 없는 이 중대한 실수를 바로잡고, 지역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부분의 역사가는 1915년부터 1923년까지 터키의 전신 오스만튀르크가 아르메니아인과 다른 소수민족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고 인정한다.

이 사건으로 150만 명 정도가 사망했고, 50만 명이 거주지를 떠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터키는 집단학살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1915년 사건'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한다. 터키는 이 사건이 전쟁 중 벌어진 '비극적인' 쌍방 충돌의 결과일 뿐이며 숨진 아르메니아인의 규모도 30만 명 정도라고 주장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