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문화](9) 제주신화 속에 담긴 삼별초 역사의 비밀
입력
수정
김통정 장군이 이끈 삼별초, 제주민에겐 '외세'일까 '충신'일까?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반대의 평가가 상존한다면, 이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1만8천에 이르는 많은 신들이 있어 '신들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제주에는 한 인물을 '긍정'과 '부정'적 시선으로 보는 각기 다른 신화가 존재한다.
그 주인공은 제주에서 삼별초(三別抄) 항쟁을 마지막까지 이끈 장수 김통정(金通精, 출생 미상∼1273년)이다.
◇ 제주 신화 속 김통정은 어떤 인물?
삼별초는 고려 원종 11년(1270년) 나라가 몽골에 복속되는 걸 반대하며 봉기한 반몽(反蒙) 세력이다. 이들은 고려의 정통정부를 자처하면서 고려·몽골 연합군에 대항해 싸우다 강화도와 진도를 경유해 제주도로 들어오게 된다.
진도가 함락되는 과정에서 배중손을 비롯해 많은 지도자가 전사하자 삼별초 잔여 세력은 김통정 장군(이하 존칭 생략)을 주축으로 약 3년간(1271∼1273년) 제주 애월읍 고성리에 항파두리성을 쌓고 여몽 연합군에 대항하다 섬멸됐다.
제주에는 삼별초의 우두머리였던 김통정을 둘러싼 이야기가 신화(당본풀이) 또는 전설의 형태로 다양하게 전해 내려온다. 특히, 김통정은 제주시 애월읍과 서귀포시 성산읍, 안덕면 등 세 지역의 당신화에서 긍정 또는 부정적인 인물로 각각 그려진다. 우선 항파두리성 인근 지역인 애월읍 고내리에는 김통정을 죽인 장수를 마을 본향당의 당신으로 삼아 받들고 있다.
고내리 본향당 본풀이는 김통정 장군을 욕심 많고 야비한 인물로 묘사한다. 신화의 내용을 간단히 보면, 난을 일으킨 김통정이 제주를 차지하려 하자 중국 천자국에서 세 장수를 보내 김통정을 잡게 했다.
세 장수는 견고하게 쌓아 올린 항파두리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애를 태우지만, 아기업게(어린아이를 업어 주며 돌보는 여자, 업저지의 제주어)의 도움을 받아 무쇠 성문을 녹여 성을 함락시켰다.
급히 달아나던 김통정은 임신한 자신의 아내를 잔인하게 죽이고 성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내 세 장수에 의해 김통정 역시 죽임을 당한다.
이후 세 장수 중 일부는 제주에 남아 지역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하게 된다.
안덕면의 광정당신화는 대부분 비슷하지만, 천자국의 세 장수가 아닌 제주 토착 당신 삼형제에 의해 김통정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반면, 성산읍에서는 김통정을 당신으로 모신다.
이 지역 신화에서 김통정은 제주로 들어와 만리 토성을 쌓고 많은 군사를 통솔한 능력 있는 장수로, 여몽 연합군을 무찔러 성산본향당 당신이 된 인물로 전해 내려온다.
또 물이 부족한 마을 사람들에게 샘을 파서 식수 문제를 해결해주는 등 제주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준 긍정적인 존재로 형상화됐다.
이처럼 김통정은 당신으로서 지역민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천자국에서 온 세 장수 또는 지역의 토착 신에게 목숨을 잃고 마는 비극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 김통정과 삼별초를 둘러싼 학계 해석 '분분'
학계는 이처럼 김통정을 둘러싼 각기 다른 신화와 전설을 분석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제주 사람들에게 김통정이 이끈 삼별초는 일종의 '외세'일까? 아니면 몽골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폭정으로부터 백성을 구한 '충신'이었을까?
제주 출신 원로 소설가인 고(故) 현길언 전 한양대 교수는 저서 '제주도의 장수설화'에서 "김통정 장군이 (제주) 백성을 시켜 토성을 쌓을 때는 극심한 흉년이었다.
당시 전설에 역군들이 배가 고파 인분을 먹었고, 쪼그려 앉아 똥을 싼 후 돌아앉아 그것을 먹으려면 이미 다른 역군들이 주워 먹었다고 한다"며 "당시 형편이 김통정과 도민 사이에 대립·갈등 관계를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별초의 입도는 도민의 입장에서는 외세의 침입이었으며, 그들에게 무력으로 눌려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민중들의 마음에는 그들에 대한 저항적인 면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순애 박사 역시 저서 '제주도 신당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외세에 저항한'이라는 수식을 붙여 김통정 장군을 기억하는 것은 국사(國史) 교육의 결과다.
국사란 어디까지나 국가라는 추상적 실체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이어서 각각의 입장이 상충하는 여러 레벨의 사회사를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 박사는 "하나의 사건도 국가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과 지역인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며 "(제주 마을에서) 모셔지는 당신이 외세 저항 운동의 수장으로 평가되는 김통정 장군을 잡으러 온 외래의 장군이라는 점은 제주인의 역사인식 혹은 제주도의 지역사가 국사의 관점과 얼마나 다른가를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권태효 박사는 '제주도 김통정 이야기의 당신화 및 전설로의 변용 양상'이란 연구논문에서 "선행연구에서는 (김통정과) 제주민들의 갈등 양상이 잘 드러난다고 보아 부정적인 각도에서 논의했었지만 당신화나 전설을 살펴봤을 때 김통정은 부정적 인물이기보다는 긍정적 인물의 성격이 확연하다"고 주장한다.
권 박사는 "역사기록에서 보면 제주민들은 고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심한 착취와 수탈로 고통을 당했기에 삼별초에 대해 아주 우호적이었고, 삼별초의 입도를 돕는 등 삼별초 항전에 동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권 박사는 김통정을 부정적으로 그린 애월과 안덕 지역의 당신화에 대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그 속에는 또 다른 의식(두려움)이 반영돼 있다고 봤다.
그는 "김통정이 여몽 연합군에게 패해 죽임을 당하고, 몽골과 고려군이 주둔해 제주를 통치하게 되면서 그들(여몽 연합군)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표면적(신화, 전설)으로 (김통정을) 왜곡해 표현하게 된 것"이라며 일면 '승자의 역사'가 당신화와 전설에 녹아든 것이라고 봤다. 다양한 주장의 옳고 그름, 사실 여부를 현재로선 가려내기 힘들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과 민중에 의해 구비전승된 제주신화, 전설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제주연구원의 문순덕 박사는 '구비문학의 역사적 의미 - 항몽 김통정 설화를 중심으로'란 연구보고서를 통해 "구비문학은 창작자와 창작시기가 정확하지 않으며, 민중들에 의해 전승되는 것으로 문학적 생명력이 길다"며 신화와 전설 등을 통해 삼별초 항쟁과 고려군, 몽골군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살아남아 전승되는 신화와 전설은 역사적인 인물을 재평가하는 보조자료로 손색이 없다"며 "구비문학의 역사적 의미는 크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반대의 평가가 상존한다면, 이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1만8천에 이르는 많은 신들이 있어 '신들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제주에는 한 인물을 '긍정'과 '부정'적 시선으로 보는 각기 다른 신화가 존재한다.
그 주인공은 제주에서 삼별초(三別抄) 항쟁을 마지막까지 이끈 장수 김통정(金通精, 출생 미상∼1273년)이다.
◇ 제주 신화 속 김통정은 어떤 인물?
삼별초는 고려 원종 11년(1270년) 나라가 몽골에 복속되는 걸 반대하며 봉기한 반몽(反蒙) 세력이다. 이들은 고려의 정통정부를 자처하면서 고려·몽골 연합군에 대항해 싸우다 강화도와 진도를 경유해 제주도로 들어오게 된다.
진도가 함락되는 과정에서 배중손을 비롯해 많은 지도자가 전사하자 삼별초 잔여 세력은 김통정 장군(이하 존칭 생략)을 주축으로 약 3년간(1271∼1273년) 제주 애월읍 고성리에 항파두리성을 쌓고 여몽 연합군에 대항하다 섬멸됐다.
제주에는 삼별초의 우두머리였던 김통정을 둘러싼 이야기가 신화(당본풀이) 또는 전설의 형태로 다양하게 전해 내려온다. 특히, 김통정은 제주시 애월읍과 서귀포시 성산읍, 안덕면 등 세 지역의 당신화에서 긍정 또는 부정적인 인물로 각각 그려진다. 우선 항파두리성 인근 지역인 애월읍 고내리에는 김통정을 죽인 장수를 마을 본향당의 당신으로 삼아 받들고 있다.
고내리 본향당 본풀이는 김통정 장군을 욕심 많고 야비한 인물로 묘사한다. 신화의 내용을 간단히 보면, 난을 일으킨 김통정이 제주를 차지하려 하자 중국 천자국에서 세 장수를 보내 김통정을 잡게 했다.
세 장수는 견고하게 쌓아 올린 항파두리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애를 태우지만, 아기업게(어린아이를 업어 주며 돌보는 여자, 업저지의 제주어)의 도움을 받아 무쇠 성문을 녹여 성을 함락시켰다.
급히 달아나던 김통정은 임신한 자신의 아내를 잔인하게 죽이고 성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내 세 장수에 의해 김통정 역시 죽임을 당한다.
이후 세 장수 중 일부는 제주에 남아 지역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하게 된다.
안덕면의 광정당신화는 대부분 비슷하지만, 천자국의 세 장수가 아닌 제주 토착 당신 삼형제에 의해 김통정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반면, 성산읍에서는 김통정을 당신으로 모신다.
이 지역 신화에서 김통정은 제주로 들어와 만리 토성을 쌓고 많은 군사를 통솔한 능력 있는 장수로, 여몽 연합군을 무찔러 성산본향당 당신이 된 인물로 전해 내려온다.
또 물이 부족한 마을 사람들에게 샘을 파서 식수 문제를 해결해주는 등 제주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준 긍정적인 존재로 형상화됐다.
이처럼 김통정은 당신으로서 지역민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천자국에서 온 세 장수 또는 지역의 토착 신에게 목숨을 잃고 마는 비극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 김통정과 삼별초를 둘러싼 학계 해석 '분분'
학계는 이처럼 김통정을 둘러싼 각기 다른 신화와 전설을 분석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제주 사람들에게 김통정이 이끈 삼별초는 일종의 '외세'일까? 아니면 몽골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폭정으로부터 백성을 구한 '충신'이었을까?
제주 출신 원로 소설가인 고(故) 현길언 전 한양대 교수는 저서 '제주도의 장수설화'에서 "김통정 장군이 (제주) 백성을 시켜 토성을 쌓을 때는 극심한 흉년이었다.
당시 전설에 역군들이 배가 고파 인분을 먹었고, 쪼그려 앉아 똥을 싼 후 돌아앉아 그것을 먹으려면 이미 다른 역군들이 주워 먹었다고 한다"며 "당시 형편이 김통정과 도민 사이에 대립·갈등 관계를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별초의 입도는 도민의 입장에서는 외세의 침입이었으며, 그들에게 무력으로 눌려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민중들의 마음에는 그들에 대한 저항적인 면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순애 박사 역시 저서 '제주도 신당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외세에 저항한'이라는 수식을 붙여 김통정 장군을 기억하는 것은 국사(國史) 교육의 결과다.
국사란 어디까지나 국가라는 추상적 실체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이어서 각각의 입장이 상충하는 여러 레벨의 사회사를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 박사는 "하나의 사건도 국가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과 지역인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며 "(제주 마을에서) 모셔지는 당신이 외세 저항 운동의 수장으로 평가되는 김통정 장군을 잡으러 온 외래의 장군이라는 점은 제주인의 역사인식 혹은 제주도의 지역사가 국사의 관점과 얼마나 다른가를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권태효 박사는 '제주도 김통정 이야기의 당신화 및 전설로의 변용 양상'이란 연구논문에서 "선행연구에서는 (김통정과) 제주민들의 갈등 양상이 잘 드러난다고 보아 부정적인 각도에서 논의했었지만 당신화나 전설을 살펴봤을 때 김통정은 부정적 인물이기보다는 긍정적 인물의 성격이 확연하다"고 주장한다.
권 박사는 "역사기록에서 보면 제주민들은 고려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심한 착취와 수탈로 고통을 당했기에 삼별초에 대해 아주 우호적이었고, 삼별초의 입도를 돕는 등 삼별초 항전에 동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권 박사는 김통정을 부정적으로 그린 애월과 안덕 지역의 당신화에 대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그 속에는 또 다른 의식(두려움)이 반영돼 있다고 봤다.
그는 "김통정이 여몽 연합군에게 패해 죽임을 당하고, 몽골과 고려군이 주둔해 제주를 통치하게 되면서 그들(여몽 연합군)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표면적(신화, 전설)으로 (김통정을) 왜곡해 표현하게 된 것"이라며 일면 '승자의 역사'가 당신화와 전설에 녹아든 것이라고 봤다. 다양한 주장의 옳고 그름, 사실 여부를 현재로선 가려내기 힘들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과 민중에 의해 구비전승된 제주신화, 전설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제주연구원의 문순덕 박사는 '구비문학의 역사적 의미 - 항몽 김통정 설화를 중심으로'란 연구보고서를 통해 "구비문학은 창작자와 창작시기가 정확하지 않으며, 민중들에 의해 전승되는 것으로 문학적 생명력이 길다"며 신화와 전설 등을 통해 삼별초 항쟁과 고려군, 몽골군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살아남아 전승되는 신화와 전설은 역사적인 인물을 재평가하는 보조자료로 손색이 없다"며 "구비문학의 역사적 의미는 크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