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 캐러 울릉도 간 노부부의 삶…사진작가 이정진의 '심마니'

스페이스22서 개인전…사진집 재출간
이정진은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미국의 사막 등 대자연을 담은 수묵화 같은 사진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은 작가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잡지 '뿌리 깊은 나무' 사진기자로 일하던 그는 1987년 울릉도에서 우연히 만난 노부부를 1년간 촬영했다.

심마니로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의 삶을 기록한 작품으로 1988년 전시를 열고 첫 사진집을 펴냈다.

이 작품집은 미국에서 뉴욕대 대학원에 입학해 사진을 전공하고 현대 사진 거장인 로버트 프랭크의 제자이자 조수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이정진이 30여 년 전의 초창기 사진을 다시 꺼냈다.

'먼 섬 외딴 집'이었던 사진집 제목을 '심마니(SIMMANI)'(이안북스)로 바꿔 출판하면서 강남구 역삼동 스페이스22에서 기념전을 2일 개막했다.

포토에세이 형식의 사진집에는 미발표 작품을 포함한 73점을 실었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을 걸으면서 인적 드문 자연에서 느낀 감정과 내면을 표현한 작업과는 또 다른 일상과 풍경이 펼쳐진다.

이정진이 심마니 부부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울릉도에 겨울 산행을 하러 갔다가 눈에 파묻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부부가 사는 집을 겨우 발견했다. 부부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속에 집을 짓고 소와 염소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심마니였던 노인은 일흔이 되던 1979년 산삼을 캐러 울릉도에 들어갔다.

라디오에서 울릉도에 산삼이 있다는 말을 듣고 훌쩍 떠났다.

부부의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작가는 바로 카메라를 들었고, 이후에도 몇 차례 울릉도를 찾았다.

1987년 12월, 부부는 9년간의 울릉도 생활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갔다.

부부를 처음 만난 날부터 시작된 작업은 그들이 울릉도를 떠나는 날 끝나게 된다.

이정진의 사진에서 울릉도는 장대한 대자연과는 다른 신비로움을 뿜어낸다.

그 속에 노부부는 자연의 일부처럼 스며들어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깜깜한 산속에서 사는 노부부의 삶이 궁금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라며 "심마니로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도인처럼, 들짐승처럼 느껴졌고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 작업한 따끈따끈한 사진보다 오래전 사진이 더 감정이입이 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라며 "뱃길이 험해 포항에서 배를 타고 8시간을 가야 했지만 자연과 완전히 동화된 원초적인 삶을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30여 년간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는 "지금과 그때의 감성이 다르고 작업도 달라졌지만, 다시 보면서 내 작업의 뿌리가 여기 있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심마니의 삶을 통해 삶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고 이후 자연에서는 풍경을 매개체로 내 감정에 깊이 들어갔다"며 "결국 모든 사람이 가진 원초적인 원형을 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마니 노인은 울릉도에서 9년간 산삼을 한뿌리도 캐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하루하루 마음을 닦고 최선을 다해 살았기에 후회하지 않는다"며 울릉도 생활을 마감했다.

책에서 작가는 "척박한 자연과 하나로 사는 그들의 삶과 정신세계에 다가가 보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라며 "돌이켜보면 평생 심마니로 살아간 노인의 삶이 작가로서 지내온 나의 여정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정진은 오는 9월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대규모 전시를 연다.

이에 앞서 7월에는 이탈리아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이달 29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