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해경, 서해 실종 공무원 사생활 공개 명예침해"(종합)

유가족 측 "월북 근거 신빙성 없어져…해경 사과해야"
해양경찰청이 지난해 9월 서해상에서 실종·사망한 공무원 이모씨의 채무상황 등 사생활 정보를 공개한 것은 유족의 인격권과 명예를 침해한 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7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 시 망인의 민감한 정보를 공개해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에 소홀했음이 인정된다"면서 김홍희 해양경찰청장에게 윤성현 수사정보국장과 김태균 형사과장을 경고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피살 공무원의 아들 이모(18)군은 지난해 11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며 "월북 여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금융자료를 발표해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군의 어머니이자 이씨의 전 부인인 권모(42)씨도 "민감한 개인신상에 관한 수사정보를 대외적으로 발표해 명예살인을 자행했고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에게 도박하는 정신공황 상태의 아빠를 둔 자녀라고 낙인찍어 미래를 짓밟았다"고 했다. 이에 해경 측은 "언론에서 피해자(이씨)의 채무·도박에 관한 의혹 제기가 있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확인해줄 필요가 있었다"며 "이씨의 도박 횟수·금액·채무 상황을 밝힌 것은 월북 동기를 밝히기 위한 불가피한 설명"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도박·채무 등에 관한 내용은 실종되기 전 중요한 행적으로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공개해야 하는 내용"이라며 "공개 목적의 정당성, 공개 내용의 상당성 등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하지 않았다"고 소명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에 대한 공개가 당연시될 수 없다"며 해경 측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실종 동기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수사의 필요성과 수사의 공개 대상은 완전히 별개"라며 "고인의 경제적 상황 등에 대한 내용은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해경의 발표 내용이 충분한 자료와 사실, 전문가 자문 등에 근거한 객관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권위 조사 결과 해경이 발표한 이씨의 채무 금액은 이후 수사에서 확인된 액수와 차이가 있었다. 또 해경 중간수사 발표에 포함된 '이씨가 도박에 몰입돼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했다'는 내용에 대해 심리 전문가 3명 중 2명은 '당사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도박장애 여부를 진단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의 내사 기록 중 '인터넷 도박 중독에 따른 월북 가능성 자문 결과' 문건에서는 '실종 직전 정신적 공황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 의견이 있었으나 '정신적 공황상태'라는 표현을 사용한 전문가는 7명 중 1명에 불과했다.

다만 인권위는 당시 과열된 취재상황과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최종 책임자인 김 청장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중간 관리자들에 대한 경고 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월북을 계속 감행하면 사살하기도 한다'라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해 김 청장 등과 같이 진정이 제기됐으나 인권위는 "단순한 정치적 주장에 불과하다"면서 각하했다. 이씨 유가족을 대리하는 김기윤 변호사는 인권위 조사 결과에 관한 입장을 내고 "해경이 그동안 주장해 오던 월북 근거, '도박으로 채무가 많아 정신공황이 왔다'는 근거는 허위일 뿐만 아니라 신빙성이 없게 된 것"이라며 해경의 사과를 요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