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성추행 수사결과] 사지 내몬 뻔뻔함…"신고할거지? 신고해봐"(종합)

사건의 재구성…가해자 "하루종일 죽어야겠다는 생각" 협박까지
상관들은 '신고말라' 회유와 협박으로 2차 가해…결국 사건 80일만에 극단적 선택
공군 고(故) 이모 중사를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것은 수 차례 거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뤄진 성추행과 피해사실 보고에도 보호는 커녕 회유와 협박으로 일관한 2차 가해였음이 군 수사결과 확인됐다.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9일 발표한 중간수사결과에 따르면 사건은 3월 2일 이 중사의 상관인 노모 상사의 주도로 민간인 1명과 함께 한 저녁 회식 이후 벌어졌다.

부대로 복귀하는 차량에 처음 탔던 사람은 총 5명이었다.

문모 하사가 운전했고 조수석에 민간인이, 뒷자리에는 왼쪽부터 이 중사, 가해자인 장모 중사, 노 상사가 차례로 앉았다. 민간인과 노 상사가 도중에 내린 뒤 부대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 중사는 이 중사가 여러 번 거부했음에도 강제적이고 반복적으로 성추행했다.

이로 인해 이 중사는 약 3개월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고 합수단은 전했다.

부대복귀 후 이 중사가 먼저 차에서 내린 뒤에도 장 중사는 이 중사를 쫓아가 "너 신고할꺼지? 신고해봐"라고 위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틀 뒤인 4일에도 장 중사는 "하루종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라는 문자를 보내 이 중사를 협박했다.

장 중사가 군인등강제추행치상 혐의뿐만 아니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보복협박 등)으로 기소된 이유다.
이 중사는 사건 직후 동료와 상관 등에게 피해사실을 바로 알렸으나 신고를 못 하게 해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회유와 신고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협박 등 2차 피해에 시달려야 했다. 사건 당일 밤 가깝게 지낸 김모 중사에게 전화해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토로했고, 이튿날 오전 10시께는 전날 회식을 주도했던 노 상사에게 강제추행 피해를 호소했다.

그러나 노 상사는 5인 이상 회식을 주도한 자신이 방역지침 위반으로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해 "없었던 일로 해줄 수 없겠냐"며 신고하지 못하도록 회유하고 협박했다.

3월 3일 오전 11시께 이 중사는 소속반 상관인 노 준위에게도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노 준위는 관리책임의 추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에 따른 반원들의 징계를 피하고자 이를 바로 신고하거나 보고하지 않았다.

노 준위는 오히려 이 중사에게 "다른 사람 처벌도 불가피하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다 피해가 간다.

너도 다칠 수 있다"라며 신고하지 못하도록 협박까지 했다.

그러나 이 중사의 신고 의사가 확고하고 더는 숨길 수 없다는 판단에 노 준위는 같은 날 밤 10시께 관련 내용을 정보통신대대장 김모 중령에게 보고했다.

합수단은 노 상사가 3월 22일에도 이 중사의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장 중사에 대한 합의와 선처를 종용하는 등 노 준위와 노 상사가 지속해서 2차 가해를 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번 사건과 별개로 노 준위와 다른 부서 소속 윤모 준위의 강제추행도 파악됐는데, 노 준위는 3월 3일 오후 9시 8분께 이 중사에게 "윤 준위 얘기는 하지마"라고 강요하기도 했다고 합수단은 전했다
노 준위는 2020년 7월 부서 회식 도중 이 중사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윤 준위는 2019년 4월 회식 자리에서 이 중사의 팔짱을 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사는 3월 4일부터 5월 2일까지 청원휴가 기간 대부분을 20비행단 안에 있는 자신과 남편의 관사에 머물렀는데, 본인 숙소는 가해자 장 중사 숙소와 960m 떨어져 있었고 2차 가해자 중 하나인 노 준위 숙소에서는 불과 30여m 거리였다.

남편 숙소도 장 중사의 숙소와 불과 200여m 떨어져 있는 등 거주지에서는 공간적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휴가 복귀 후 5월 18일에서야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된 이 중사는 사흘 뒤인 21일 반일 휴가를 내 혼인신고를 하고서 20비행단의 남편 관사로 가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3월 2일 성추행을 당한 이후로 정확히 80일 만이다.

시신은 이튿날 남편이 발견해 신고했다.
합수단은 "3월 2일 이 중사가 선임부사관에 의해 성추행을 당한 이후 여러 차례 신고했으나 군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회유와 협박, 면담강요, 피해사실 유포 등의 2차 가해가 지속돼 5월 21일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이라고 이번 사건을 규정했다.

한편 이 중사는 사후에도 가까웠던 동료에게 배신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추행 피해 사실을 가장 먼저 털어놨던 김 중사는 이 중사 사망 이후인 지난달 1일 가해자들에게 불리한 증거인 통화 녹음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은 언론보도로 사건이 알려진 다음 날이자 국방부 합수단이 수사에 착수한 때다.

특히 합수단은 김 중사가 이 중사보다는 가해자들의 이익을 위해 녹음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김 중사도 삭제 과정에 개입한 20비행단 정보통신대대장(중령)과 함께 증거인멸 혐의로 최근 재판에 넘겨졌다.


/연합뉴스